Skip to Content

무지외반증, 교정기로 다시 모일 줄 알았다

장수가 목표

발가락 사이에 끼우는 실리콘 하나를 샀다.

엄지랑 둘째 발가락 사이를 벌려준다는 그 물건. 여기에 발가락 양말까지 같이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이걸 밤마다 끼고 자면 삐뚤어진 발가락이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다. 무지외반증. 엄지발가락 뿌리 뼈가 안쪽으로 툭 튀어나오기 시작한 걸 여름 샌들 신으려다 뒤늦게 봤고, 그날로 검색창에 교정기부터 쳤다.

며칠 껴봤다. 발가락 사이가 벌어지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는데, 아침에 빼고 나면 발은 어제랑 똑같았다. 당연한 거였다. 그걸 나만 몰랐다.

엄지발가락 뿌리가 왜 이렇게 튀어나왔나

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 쪽으로 휘고, 엄지와 관절을 이루는 뼈는 반대로 안쪽으로 치우치면서 관절 안쪽이 돌출되는 변형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를 보면 심하면 엄지가 둘째 발가락 위아래로 겹쳐지기까지 한단다. 그 튀어나온 관절 안쪽이 신발에 쓸려 빨갛게 붓고 아픈 게 흔히 말하는 건막류다.

내 경우엔 아직 겹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안쪽 뼈가 도드라져서, 늘 신던 운동화 옆선에 닿으면 은근히 배기는 정도. 근데 이게 그냥 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엄지가 제 역할을 못 하면 둘째·셋째 발가락 발바닥으로 체중이 쏠려 굳은살이 생긴다더라. 실제로 그 자리에 굳은살이 하나 잡혀 있었다. 발가락 하나 삐뚤어진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발 전체가 조금씩 다르게 쓰이고 있었던 거다.

엄지발가락이 휘면 발에 생기는 변화

하이힐 탓인가 유전인가

여기서 제일 궁금했던 건 대체 왜 나한테 왔냐는 거였다. 하이힐을 그렇게 많이 신은 것도 아닌데.

대한정형외과학회 자료를 보면 신발을 안 신는 사람에서 무지외반증은 약 2%인데, 신발을 신는 사람에서는 약 33%까지 올라간다. 그러니까 볼 좁고 굽 높은 신발이 큰 원인인 건 맞다. 성인 무지외반증이 대부분 여성에게 오는 것도 이 신발 요인과 얽혀 있고.

근데 신발이 전부는 아니었다. 같은 학회 자료에서 환자의 가족력 보유 비율이 58~88%, 그것도 주로 어머니 쪽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서울대병원도 모계유전 확률이 높다고 짚는다. 정리하면 유전적으로 잘 생기는 발을 타고난 사람에게 신발 같은 환경이 겹쳐 생기는 복합 원인이라는 거다. 하이힐 신는다고 다 생기는 것도, 안 신는다고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엄마 발을 떠올려보니 엄지 쪽이 비슷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 이래서였나 싶었다.

통계로 봐도 나 같은 사람이 흔하긴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기준 2013년 진료 인원 중 여성이 84.7%, 40~60대가 68.1%로 대다수였다더라. 하필 여름철인 7월에 환자가 가장 많았다는데, 샌들 신으려다 발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교정기로는 안 모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그 실리콘 교정기가 소용없었냐 하면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처음엔 낫는 줄 알았다. 아니다, 정확히는 낫게 해주는 물건인 줄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이미 벌어진 뼈는 발가락 양말이나 교정기로 다시 모이지 않는다. 한 전문의는 발가락 양말·교정기를 착용한다고 벌어진 뼈가 다시 모이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더라. 대한정형외과학회도 엄지와 둘째 발가락 사이를 벌려주는 보조기로 변형 진행을 늦추는 효과는 기대해볼 수 있지만, 교정이나 치료 효과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애초에 ‘교정기(corrector)’가 아니라 ‘보조기(splint)’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걸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정리됐다. 목표를 헷갈리고 있었던 거다. 되돌리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고 아픈 걸 줄이는 것. 그러면 할 일이 분명해진다. 볼 넓고 굽 낮은 신발로 바꾸는 게 제일 먼저였다. 발가락으로 바닥의 수건을 집어 올리거나, 엄지에 힘을 주고 까치발로 몇 초 버티는 것 같은 발 근육 운동도 진행을 늦추고 통증을 더는 쪽으로는 의미가 있다더라. 교정 깔창이나 중족골 패드도 낫게 하는 건 아니고 눌리는 압력을 나눠주는 용도고. 이 발이 발바닥부터 어떻게 힘을 쓰는지가 궁금해져서 예전에 정리해둔 아침 첫발이 유독 아픈 족저근막염 이야기도 다시 들춰봤다. 발은 어디 한 군데만 따로 아프지 않았다.

무지외반증 진행을 늦추는 관리 방법

그래서 지금 내가 확인하는 것

집에서 대략은 확인해볼 수 있다. 반듯이 서서 흰 종이 위에 올라가 발을 따라 그리거나 위에서 사진을 찍어 엄지 기울기를 보는 방법인데, 대략 12도 이상 기울면 의심해보라는 정도로 소개된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집에서 눈대중으로 재는 기준이고, 병원에서 X-ray로 재는 각도와는 측정 방식이 다르다. 정상은 15도 이내, 20도 넘으면 진단, 그 위로는 통증과 X-ray를 함께 봐서 정하는 거라 각도 숫자 하나로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집에서 재는 발 각도와 병원 진단 기준

수술 얘기도 찾아봤는데, 변형이 계속 나빠지거나 신발·운동·보조기로도 통증이 안 잡히거나 일상이 힘들 정도일 때 고려한다더라. 나는 아직 거기까진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종이에 발 대고 각도 재보는 것, 신발 갈아 신는 것, 자기 전 발가락 운동 몇 개. 딱 여기까지다.

솔직히 교정기 사면서 뼈가 모일 거라 믿었던 게 좀 민망하긴 하다. 그래도 목표를 잘못 잡고 돈만 쓰는 것보단, 안 모인다는 걸 알고 신발부터 바꾼 지금이 낫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