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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엘보, 라켓 한 번 안 잡았는데 팔꿈치가 아프다

장수가 목표

며칠 전부터 오른쪽 팔꿈치 바깥쪽이 콕콕 쑤셨다. 처음엔 어디 부딪혔나 했다. 부딪힌 기억은 없는데 프라이팬을 들 때, 걸레를 짤 때, 문 손잡이를 비틀 때 유독 팔꿈치 바깥쪽이 찌릿했다. 인터넷에 “팔꿈치 바깥쪽 통증”을 넣었더니 맨 위에 뜬 게 테니스 엘보였다. 라켓은 커녕 테니스장 근처도 안 가봤는데 이게 왜 나한테.

알고 보니 이름만 테니스지, 정작 테니스 치는 사람은 이 병 환자의 5~10%밖에 안 된단다. 나머지는 다 나 같은 사람이었다.

팔꿈치 바깥쪽 통증, 원인은 라켓이 아니라 걸레였다

정식 병명은 외측상과염이다. 팔꿈치 바깥쪽 뼈 돌출부에 붙는 힘줄이 상하는 병. 이름에 테니스가 붙은 건 예전에 테니스 선수들한테 흔해서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손목을 손등 쪽으로 젖히는 동작과 물건을 꽉 쥐는 동작을 반복하면 생긴다.

그 목록을 보다가 좀 벙쪘다. 걸레·행주 짜기, 설거지, 빨래, 무거운 프라이팬 들기, 아이 안아 올리기, 마우스·키보드 오래 쓰기. 내가 하루에 몇 번씩 하는 것들이 그대로 나열돼 있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서도 가사노동과 컴퓨터 작업을 대표 원인으로 짚었다. 주부는 빨래나 행주 짤 때 특히 아플 수 있다고까지 적혀 있더라.

그러니까 라켓 한 번 안 잡아도 걸린다. 오히려 라켓보다 걸레와 프라이팬, 마우스가 훨씬 흔한 범인이다. 나처럼 걸레 짜고 프라이팬 드는 사람은 이미 매일 팔꿈치를 훈련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훈련이 아니라 혹사였지만.

라켓 대신 팔꿈치를 상하게 하는 일상 동작

40대 넘어가니 왜 하필 나였나

숫자를 좀 찾아봤다. 환자의 연령대를 보면 40대가 30%, 50대가 36%, 60대가 18%다. 30대까지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가 40대부터 확 늘어난다. 딱 지금 내 나이 언저리에서 곡선이 꺾인다.

여기서 눈에 걸린 건 성별이었다. 30대까지는 무리한 운동 탓에 남자 환자가 더 많은데, 40대부터는 가사노동 때문에 여자 환자가 더 많아진다더라. 힘줄 관련 연구들을 봐도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위험 요인으로 보고된다. 국내 수진자가 한 해 66만 명, 8년 사이 37% 늘었다는 통계까지 보고 나니 이게 나만의 유별난 일이 아니라는 게 좀 실감났다.

왜 하필 40대 이후냐. 젊을 때보다 힘줄이 자연스럽게 약해지고, 미세하게 상한 걸 회복하는 속도도 떨어져서다. 매일 쓰던 동작인데 어느 순간부터 회복이 손상을 못 따라가는 지점이 온다. 손목 쪽으로 내려가면 손목터널증후군도 비슷하게 반복 사용에서 오는데, 팔은 이래저래 우리가 제일 안 쉬게 하는 부위인 것 같다.

염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힘줄이 낡은 거였다

이 부분이 좀 뜻밖이었다. 병명이 ‘-염’으로 끝나니까 당연히 염증인 줄 알았다. 파스 붙이고 얼음찜질하면 가라앉겠거니. 그런데 조직검사를 해보면 정작 염증세포가 거의 안 보인단다.

그래서 학계는 이걸 염증이 아니라 힘줄 퇴행으로 본다. 외측상과염 학술 리뷰를 보면, 손상된 힘줄 안에서 콜라겐이 무질서하게 엉키고 엉성한 조직으로 바뀌어 있다고 한다. 불이 나서 붉게 부은 게 아니라, 오래 쓴 밧줄의 올이 풀린 상태에 가깝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염증이면 ‘끄면’ 되지만, 낡은 거라면 ‘끄기’가 아니라 ‘다시 튼튼하게 만들기’가 답이다. 나는 여태 얼음찜질 생각만 했는데, 찜질은 아픈 걸 잠깐 덜어줄 뿐 풀린 올을 다시 꼬아주진 못한다는 얘기다. 몸이 이렇게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는 줄도 모르고 파스만 사러 다닐 뻔했다.

쉬면 낫는다는 말, 절반만 맞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좀 쉬면 되겠네”였다. 팔 안 쓰면 낫겠지.

그런데 이건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완전히 손 놓고 쉬기만 하면 안 그래도 약해진 힘줄이 더 약해진 채로 방치돼서 오히려 만성으로 굳는 경우가 많다더라. 핵심은 ‘중단’이 아니라 ‘조절’이다. 아픈 동작을 아예 끊는 게 아니라 강도와 빈도를 줄이고, 걸레는 나눠 짜고, 무거운 프라이팬은 양손으로 들고, 마우스는 오래 잡지 않는 식으로 바꾸는 것.

회복 기간을 보고는 마음을 좀 내려놨다. 대체로 낫긴 하는데, 한 번 시작되면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대다수는 1년 안에 좋아지지만 몇 주 만에 뚝딱 낫는 병은 아니라는 것. 힘줄을 늘리며 부하를 주는 편심성 운동이 통증과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고, 팔뚝에 감는 카운터포스 밴드도 힘줄에 가는 힘을 줄여 단기적으로 통증을 덜어준다. 다만 밴드 하나만 믿을 건 아니고 운동·활동 조절과 같이 가야 한다더라.

테니스 엘보 회복 관리 순서

주사나 수술 얘기도 나오던데, 스테로이드 주사는 6주까지는 잘 듣다가 그 뒤론 이점이 사라지고 재발이 잦다고 한다. 이쯤 되니 결국 판단은 내 몫이 아니라 진료실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주 자가 관리로도 안 낫거나, 밤에 자다 깰 만큼 아프거나, 손에 힘이 눈에 띄게 빠지면 그건 병원 갈 신호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건 내가 뭘 크게 잘못해서 걸린 병이 아니라, 그냥 팔을 오래 성실히 써온 사람에게 오는 거였다. 아니, 성실이라기보다 안 쉬어서겠지. 쉬는 법을 몰랐던 거다.

일단 오늘 저녁 설거지는 왼손을 좀 섞어서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