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디서 읽었다.
장수 연구에서 오랫동안 쓰인 데이터 대부분이 남성 피험자에서 나온 것이라고.
아.
그 한 마디가 머리에서 잘 안 떠났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느낌이 거기서 왔구나, 하는.
나도 그랬다. 건강 정보를 찾을 때마다 왠지 내 상황에 딱 맞지 않는 것 같은 찜찜함. 연구 결과라는데 내 몸엔 잘 안 맞는 것 같은 느낌. 그게 착각이 아니었을 거다.
여성은 더 오래 살지만, 더 아프게 산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2026년 4월 UN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숫자 뒤에 뭔가 더 있다.
여성은 삶의 더 많은 시간을 나쁜 건강 상태로 보낸다. 남성보다 약 25%나 더. 만성 통증, 피로, 치료받지 못한 질환, 오진. 오래 사는데 더 아프게 사는 거다.
UN Women은 이걸 두고 “여성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의료 시스템”의 문제라고 했다. 그 시스템의 뿌리가 바로 연구 데이터다.

왜 데이터가 남성 기준이었나
1977년, 미국 FDA가 가임기 여성을 임상시험에서 배제하는 지침을 냈다. 이유는 태아 보호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는? 거의 모든 여성이 거의 모든 의약품 연구에서 20년 가까이 빠지게 됐다.
이유가 또 있었다. 여성은 월경 주기 때문에 호르몬 변동이 있어서 데이터가 복잡해진다고. 여성 피험자는 비용이 더 든다고. 그리고 가장 황당한 이유 — “여성도 남성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가정.
1993년 그 지침은 철폐됐지만, 유산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1,433건의 임상시험을 분석했더니 여성 참여자 비율이 평균 41.2%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수면제, 항히스타민제, 아스피린, 마취제. 이런 흔한 약들도 여성과 남성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그제야 알게 된 거다.
여성의 노화에는 남성에 없는 분기점이 있다
남성의 노화는 완만한 곡선이다. 근육이 서서히 줄고, 심혈관 기능이 천천히 떨어진다.
여성은 다르다. 폐경이라는 지점이 있다.
한국 여성의 평균 폐경 나이는 49.7세. 그 전까지는 에스트로겐이 꽤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뼈, 근육, 혈관, 심장. 그게 짧은 시간 안에 바뀐다.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노화 생물학 연구의 99%는 이 폐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설계됐다.
심혈관 질환: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심혈관 질환은 남성의 병이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 폐경 전 여성은 상대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에스트로겐 덕분에.
그런데 폐경 이후에는 그 보호막이 사라진다. 60대가 되면 여성의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남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문제는 의료계도 이걸 오랫동안 잘 몰랐다는 거다. 관상동맥 질환은 여성에서 남성보다 7~10년 늦게 발생하기 때문에, 여성이 심장마비 증상을 보여도 오진할 확률이 50%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심장재단(BHF) 자료다.
그리고 여성의 심장마비 증상은 남성과 다를 수 있다 — 가슴 통증 대신 위통, 구역감, 피로감. 이게 “다른 병”으로 오인되기 쉬운 이유다.
근감소증: 운동해도 남성만큼 효과가 안 나오는 이유
근감소증 유병률은 여성이 더 높다. 여성 17%, 남성 12%.
에스트로겐은 근육 위성세포의 증식을 촉진한다. 그게 없어지면 근육 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폐경 이행기에는 근육량이 연간 0.5% 줄고, 체지방은 연간 1.7% 늘어난다. 같은 운동을 해도 남성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시기가 온다는 얘기다.
이전에 근감소증에 대해 쓴 글에서 근육이 수명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성별 이야기가 더해지는 거다. 여성에게 더 빠르게, 더 급격하게 온다.
골밀도: 폐경 직후 5년이 결정적
폐경 후 처음 5~7년 동안 여성은 골밀도의 최대 20%를 잃을 수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이 뼈에는 엄청난 시간이다.
그 이후에는 남성과 비슷한 속도로 줄어들지만, 이미 그 5년이 낮춰놓은 기준선에서 시작하는 거다.

장수 개입도 성별 반응이 다르다
이 부분이 나는 제일 놀라웠다.
라파마이신이라는 mTOR 억제제가 있다.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물질인데, 여성 생쥐에서의 수명 연장 효과가 남성보다 의미 있게 크다. 반면 17-알파 에스트라디올은 남성 생쥐의 수명은 연장하지만 여성 생쥐에는 효과가 없다. 칼로리 제한도 양쪽 모두 효과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대사 변화와 건강 이점이 다르다.
2026년 4월 Fight Aging! 검토 보고서는 “한 성별에서 얻은 결과를 다른 성별에 일반화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그러니까, 장수 연구에서 나온 “이것이 수명을 연장한다”는 결론이, 여성에게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거다.
2026년, 그래도 달라지고 있다
하버드 의대는 “과학 데이터의 공백이 노화하는 여성에 대한 케어의 공백으로 이어진다”고 명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폐경 여성에 특화된 심혈관 위험 평가 연구가 진행 중이고, 폐경과 근감소증의 관계를 보는 성 특화 임상시험도 돌아가고 있다. 2026년이 여성 건강 수명 연구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되고 있다는 게 조금은 느껴진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변하고 있다.
지금에야 나도 알게 됐지만 — 내 몸에 맞는 정보를 고르는 눈이 조금은 필요한 것 같다.
건강 정보 읽을 때 “이거 어떤 사람 대상으로 한 연구야?”를 한 번씩 물어보는 것. 그 정도는 할 수 있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