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냥 기다렸다. 3층 올라가는 데도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릴 때까지 폰을 들여다봤다. 계단이 바로 옆에 있어도 그건 급할 때나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도 그랬고, 집 현관 앞도 그랬다. 계단 오르기가 장수랑 무슨 상관이냐 싶었는데, 어느 날 기사 하나를 읽고 나서 그 엘리베이터 앞 몇 초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회사에서 5층까지는 그냥 걸어 올라간다. 헐떡이면서. 뭐가 나를 바꿔놨는지, 그리고 그게 정말 몸에 남는 건지 하나씩 짚어봤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그게 왜 사망 위험 이야기까지 갔나
처음 걸린 건 숫자였다. 평소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심혈관질환으로 죽을 위험이 더 낮더라는 얘기.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대학 연구팀이 여러 연구를 모아 분석한 결과인데, 심혈관 사망 위험은 약 39%, 모든 원인으로 죽을 위험은 약 24% 낮았다는 수치가 국내 매체에 실렸다. 학회 초록 쪽에서는 상대위험도로 심혈관 사망이 약 35% 낮다고 잡히기도 해서 수치 폭이 조금 있는데, 어느 쪽이든 “계단 오르는 사람이 덜 죽더라” 방향은 같다. 자세한 건 유럽예방심장학회지에 실린 계단 오르기 메타분석에 나온다.
숫자를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 이게 무슨 특별한 운동도 아니고, 그냥 계단인데. 게다가 이 분석에 들어간 사람 중 절반 넘게가 여성이었고 나이도 35~84세였다. 남 얘기라고 넘기기가 어려웠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 연구는 계단을 오르는 사람과 낮은 사망 위험이 “같이 나타났다”는 거지, 계단만 오르면 오래 산다는 인과를 증명한 건 아니다. 계단 오르는 사람이 원래 더 부지런하고 건강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 규모에서 방향이 이렇게 나온다는 건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웠다.

그래서 하루 몇 층이면 되는데
가장 궁금했던 게 이거였다. 대체 얼마나 올라야 하나. 매일 20층씩 정복해야 하는 거면 나는 벌써 포기했을 거다.
찾아보니 이점이 가장 크게 나타난 건 하루 약 6개 층, 계단으로 치면 60개 정도였다. 심폐지구력을 올리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이 정도가 괜찮다는 거다. 국내 건강매체들도 “매일 6개 층이면 사망 위험이 뚝”이라는 식으로 이 숫자를 소개한다. 물론 건강 증진 목적으로 더 많이 권하는 정보도 있지만, 그건 대규모 연구 근거라기보다 일반 권장 수준이라 나는 6층을 기준으로 삼았다.
6층. 이게 되게 애매하게 현실적인 숫자다. 우리 회사가 마침 6층 건물이라, 아침에 1층부터 걸어 올라가면 딱 하루치가 채워진다. 계단참을 돌 때마다 속으로 층수를 셌다. 셋, 넷. 4층쯤 되면 종아리가 뻐근하고 5층에서는 숨이 찬다. 처음엔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었다.
짧아도 세다, 시간 없는 사람에게 계단이 남는 이유
계단이 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힘든지도 알게 됐다. 계단 오르기는 강도가 꽤 높은 활동이다. 한 칸씩 올라도 웬만한 성인에게는 고강도 범주에 들 만큼. 그러니 10분만 올라도 초보한테는 충분히 벅찰 수밖에.
여기서 나 같은 사람한테 진짜 중요한 개념이 하나 나온다. VILPA라고, 짧고 산발적인 일상 고강도 활동을 뜻하는 말이다. 출근길 빠른 걸음, 계단 오르기처럼 1~2분짜리 짧은 격한 움직임을 말한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못 내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 이 얘기다. 25,241명을 추적한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UK Biobank 연구를 보면, 하루 몇 번 1~2분씩 이런 움직임을 한 사람은 전체 사망 위험이 상당히 낮았고 심혈관 사망 위험은 절반 가까이 낮게 나타났다.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헬스장을 못 가서, 러닝을 못 해서 죄책감만 쌓였는데 — 아침에 계단 오르며 숨찬 그 1~2분이 아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던 거다. 물론 이것도 관찰 연구라 “계단이 수명을 늘린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없는 시간을 쥐어짜 헬스장 등록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계단을 쓰는 쪽이 나한테는 훨씬 지킬 만했다.
심장만이 아니라 다리 힘, 밥 먹고 나서도
계단이 심혈관 얘기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오래 사는 것과 별개로, 나이 들수록 걱정되는 게 다리 힘이다.
짧게라도 계단을 오르면 나이 든 사람의 다리 근력과 근파워가 개선된다는 연구가 있다. 다리 힘은 균형을 잡고 넘어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생활하는 것과 바로 연결된다. 오죽하면 계단 오르는 능력 자체를 몸 상태를 재는 임상 지표로 쓸 정도다. 엄마가 요즘 무릎이 안 좋다고 계단을 피하시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이 대목이 오래 남았다.
혈당 쪽도 재미있었다. 밥 먹고 나서 딱 1분만 계단을 오르내려도 식후 혈당과 인슐린이 내려갔고, 3분이면 인슐린 저항성이 개선됐다는 실험이 있다. 다만 이건 한 끼 먹고 난 직후의 짧은 효과를 본 소규모 실험이라, 이걸 오래 하면 당뇨가 낫는다는 얘기로 부풀리면 안 된다. 그냥 점심 먹고 자리로 돌아갈 때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한 층 도는 정도의 근거로 딱 좋다. 실제로 나도 점심 먹고 4층에서 6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걸 며칠 해봤는데, 오후에 덜 졸린 느낌은 있었다. 이건 순전히 내 기분일 수도 있고.
무리하면 오히려 무릎, 시작은 한두 층부터
여기까지 읽고 당장 두 칸씩 뛰어오르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잠깐. 두 칸씩 오르면 심폐·근력 자극은 커지지만 무릎에 실리는 하중도 그만큼 커진다. 무릎 연골이 약하거나 퇴행성관절염이 있거나 근력이 너무 없는 사람은 무리해서 계단을 정복하려 들지 않는 게 낫다.
의외였던 건 내려갈 때다. 계단 낙상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세 배쯤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초보라면 오를 때만 계단을 쓰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나도 무릎이 시큰한 날은 그렇게 한다.
집에서만 계단을 올라도 되나 싶었는데, 좌식 생활을 하던 여성들을 대상으로 집 계단 오르기와 헬스장 스텝머신을 비교한 8주 통제 연구가 있다. 결과는 집 계단과 헬스장 기계의 이점이 서로 비슷했다. 심폐체력이 올라가고 체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이 줄었다. 참가자 평균 연령이 30대 초라 40대에 그대로 갖다 붙이긴 조심스럽지만, “특별한 장비도 헬스장도 없이 집·회사 계단만으로 된다”는 방향은 나한테 충분히 힘이 됐다.
쓰다 보니 하나 정정해야겠다. 나는 이걸 처음엔 “운동을 대체하는 꼼수” 정도로 여겼다. 며칠 지나서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계단은 원래 운동을 못 하는 날에도 몸을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여두는 장치에 가깝다. 뭔가를 시작하는 문턱을 없애주는 것.
오늘도 아침에 6층까지 세면서 올라왔다. 넷, 다섯, 여섯. 자리에 앉아 커피를 켜고, 이제 밀린 메일함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