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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걸음 수, 만 보 못 채운 날 자책하다 숫자를 다시 봤다

장수가 목표

7,842보.

자기 전에 앱을 열었더니 그날 하루 걸음 수가 그렇게 찍혀 있었다. 만 보에서 2천 보 넘게 모자란 숫자. 화면 속 원형 게이지가 다 안 채워지고 조금 비어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오늘도 목표를 못 채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회사 다니고 집안일 하고 그 사이사이에 애 챙기다 보면 만 보가 그렇게 쉽게 채워지는 숫자가 아니다. 그런데 그 게이지 하나 때문에 하루가 미달로 끝난 기분이 됐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만 보라는 숫자, 대체 누가 정한 거지.

만 보라는 숫자, 알고 보니 연구가 아니라 광고에서 나왔다

찾아보고 좀 벙쪘다. 하루 1만 보는 어떤 연구 결과가 아니었다. 1960년대 일본에서 나온 만보계 마케팅 문구였다. 1965년경 일본 회사 야마사가 “만보계(万歩計)”라는 이름의 만보계를 내놨는데, 이름 자체가 “만 보를 재는 기계”라는 뜻이다. News-Medical의 정리에 따르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 일본에 건강 붐이 불던 때 나온 제품 이름이었다더라.

숫자 1만이 골라진 이유도 생리학적 근거가 아니라 그냥 단순하고 기억하기 쉬워서였다는 거다. 한자 만(万) 모양이 걷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매일 밤 게이지 앞에서 자책하던 그 기준은, 처음부터 과학이 아니라 잘 만든 광고 카피였던 셈이다.

이걸 알고 나니 좀 허탈했다. 그동안 못 채운 날마다 스스로에게 미달 도장을 찍고 있었는데, 애초에 그 기준선이 근거가 없던 거였다.

7000보와 만 보의 건강 이득 비교

그럼 몇 보를 걸어야 하나, 최신 연구는 7,000보를 짚었다

그럼 진짜 기준은 어디쯤인가. 2025년 7월 시드니대 연구팀이 The Lancet Public Health에 발표한 메타분석이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014년부터 2025년까지 나온 57개 연구를 종합했다.

하루 2,000보 걷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7,000보를 걸으면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47% 낮아졌다. 치매 위험은 38%, 우울 증상은 22% 낮았다. 여기서 내가 눈이 커진 대목은 따로 있었다. 7,000보와 10,000보를 직접 비교했더니 사망 위험 감소 효과가 거의 똑같았다는 것. 치매도 7,000보에서 38% 줄었는데, 만 보까지 늘려도 추가로 줄어드는 건 7%포인트 정도에 그쳤다.

연구를 이끈 딩 교수는 “7,000보를 넘어서면 대부분의 건강 지표에서 추가 이득은 미미했다”고 짚었다. 그러니까 만 보를 채우려고 애쓴 그 마지막 3,000보가, 몸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안 만들었다는 얘기다.

나이에 따라 살짝 다르긴 하다. 2022년 같은 학술지에 실린 15개 코호트 메타분석을 보면, 60세 이상은 6,000~8,000보 부근에서, 60세 미만은 8,000~10,000보 부근에서 사망 위험 감소가 완만해졌다. 40대인 나는 젊은 쪽이니 완만해지는 지점이 조금 더 높은 편. 그래도 방향은 같다. 7,000~8,000보 언저리면 이득의 대부분을 가져간다.

한 가지 더 마음이 놓인 건, 걷기의 보호 효과가 아주 적은 걸음에서도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하버드 헬스가 정리한 자료를 보면 하루 3,900보만 돼도 조기 사망 위험이 낮아지고, 2,300보 수준에서도 심혈관 이득이 나타났다. 지금 3,000보 걷는 사람이 5,000보, 7,000보로 올리는 그 중간 구간에서 위험이 가장 크게 줄어든다는 거다. 0에서 조금 늘리는 게, 많이에서 더 많이 늘리는 것보다 이득이 크다.

걸음 수만 세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읽고 나는 이제 7,000보만 채우면 되겠다고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이건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숫자만큼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었다. 걷는 속도. UK 바이오뱅크 자료를 분석한 NIHR 연구에서, 스스로 “빠르게 걷는다”고 답한 사람이 “느리게 걷는다”고 답한 사람보다 기대수명이 길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저체중부터 고도비만까지 모든 체중 구간에서 나타났다. 체중과 상관없이 걷는 속도 자체가 하나의 신호였던 거다.

같은 연구에서 75세 여성이 “빠른 걸음”이라 답하면 이후 10년 중 평균 8.4년을 건강한 상태로 보냈고, 이건 느린 걸음 여성보다 8개월가량 긴 시간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빠른 걸음의 기준은 대략 분당 100보. 숨이 살짝 차오르는 정도의 속도다.

그러니까 같은 7,000보라도 느릿느릿 걸은 것과 숨이 조금 찰 만큼 걸은 게 다르다는 얘기. 숫자만 봤는데, 알고 보니 어떻게 걷느냐도 봐야 했다. 40대가 시간을 쥐어짜 걸음 수를 억지로 늘리기보다, 이미 걷고 있는 구간을 조금 더 빠르게 걷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에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시간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되니까.

시간 안 늘리고 걸음 수 챙기는 방법

앉은 시간을 쪼개는 게 먼저였다

그래서 실제로 뭘 바꿨느냐. 만 보라는 큰 목표를 내려놓고 나니 접근이 달라졌다. 하루를 통째로 걷기로 채우려는 게 아니라, 앉아 있는 시간 사이사이에 걸음을 끼워 넣는 쪽으로.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위험 요인이라는 자료가 마음에 걸렸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으면 혈액순환이 떨어지고 척추 부담도 커진다. 그래서 걸음 수만큼이나 “앉은 시간 끊기”가 중요하다는 거다. 이건 예전에 오래 앉아 일하면서 허리가 뻐근하던 시절에도 겪었던 문제라 더 와닿았다.

자료에서 권하는 건 소위 ‘운동 간식’이었다. 하루 종일 앉아 일해도 매시간 짧게 걷기만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 1시간마다 5분, 혹은 1시간에 두 번 3분씩. 나는 이걸 거창하게 안 하고 그냥 물 마시러 갈 때 멀리 돌아가고, 화장실 갈 때 한 층 위 걸 쓰는 식으로 시작했다. 점심 먹고 나서 건물 한 바퀴 도는 것도 소화에 좋다길래 붙였다.

정리하면 이렇다. 만 보를 채우는 하루 하나보다, 그럭저럭 7,000보를 매일 걷는 쪽이 낫다. 손목 위 숫자에 하루가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게, 지난달 안정시 심박수를 짚어봤을 때 느낀 것과 비슷했다. 결국 숫자는 몸을 다시 보는 창이지, 하루를 채점하는 시험지가 아니었다.

만 보는 광고였고, 내 몸은 그보다 관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