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행주를 짜도 물이 줄줄 흘러.”
추석 연휴에 친정 싱크대 앞에서 엄마가 웃으면서 한 말이다. 나도 웃고 넘겼다. 그런데 서울 올라오는 차 안에서 악력 평균을 검색하고 있더라. 엄마 손아귀 힘이 걱정돼서였는지, 내 손이 걱정돼서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검색하다 걸린 게 질병관리청이 지난 8월에 낸 자료였다. 제목부터 “부모님 건강, 따뜻하게 맞잡은 ‘손아귀 힘(악력)’으로 살펴보세요”였고, 일상에서 볼 신호로 손 맞잡기, 페트병 뚜껑 열기, 그리고 물수건 짜기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행주. 방금 들은 그 행주.
85%라는 문장이 자꾸 걸렸다
자료를 끝까지 읽어보니 한 문장에서 멈칫하게 됐다. 악력이 저하된 노인의 85.0%가 근감소증을 같이 갖고 있었다는 문장. 반대로 악력이 정상인 노인에게서는 근감소증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도도 붙어 있었다. 손 힘 하나로 이렇게까지 갈린다고? 그게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저하 기준은 여성 18kg 미만, 남성 28kg 미만이다. 국가건강정보포털에 올라온 질병관리청 발표를 보면 이 기준에 걸린 65~74세는 우울장애 유병률이 14.3%로, 악력이 정상인 같은 연령대(2.0%)보다 일곱 배 넘게 높았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좀 서늘했다. 손 힘이 약하다는 게 팔 근육 얘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분이나 사람 만나는 일까지 같이 끌려 내려간다는 얘기처럼 읽혀서. 물론 악력이 약해서 우울해진다고 읽으면 곤란하다. 같이 나타난다는 거지. 그래도 엄마가 요즘 모임에 덜 나간다던 말이 겹쳐 떠올라서, 그날 밤 전화로 괜히 이번 주 모임은 나가셨냐고 물어봤다.
하나 더. 65~69세에서는 근감소증이 여성 5.8%, 남성 2.6%로 여성 쪽이 더 많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엄마 얘기이면서, 이십 년쯤 뒤 내 얘기이기도 한 숫자다.

악력 평균 표를 펴놓고 내 숫자를 다시 봤다
엄마 손 걱정부터 했는데, 따져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한국인 악력은 남녀 모두 35~39세에 꼭대기를 찍고 그다음부터 내려온다. 국민건강영양조사 2014~2015년 자료로 7,969명의 기준값을 뽑은 PLOS ONE 연구에 나오는 얘기다. 그러니까 엄마의 행주는 결과고, 내리막 입구에 서 있는 건 사실 나였다.
같은 연구에서 여성 우세손 평균은 이렇게 나온다.
| 나이 | 여성 우세손 악력 평균 |
|---|---|
| 40~44세 | 24.5kg |
| 45~49세 | 24.0kg |
| 50~54세 | 23.5kg |
| 55~59세 | 22.6kg |
1년에 확 떨어지는 게 아니라 5년에 0.5kg씩 슬금슬금. 이런 게 더 무섭다. 느낄 틈이 없으니까.
7월에 노화 속도 자가 체크를 하면서 사둔 전자 악력계를 서랍에서 다시 꺼냈다. 그때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두세 번 쥐고 제일 높은 값을 적었다. 이번에 표를 보다가 알았다. 이 평균은 선 자세로, 팔꿈치를 쭉 편 채, 양손을 번갈아 세 번씩 재서 낸 평균이었다. 내가 잰 방식이랑 조건이 달랐던 거다.
그래서 거실에 서서 팔을 몸 옆으로 쭉 내리고 왼손, 오른손, 왼손, 오른손. 세 번째쯤 되니까 손가락 마디가 뻐근해지면서 숫자가 먼저보다 덜 올라갔다. 오른손 평균을 내보니 22kg 조금 넘었다. 7월에 적은 최고값보다 낮고, 내 나이대 평균보다도 살짝 아래. 최고값만 적으면 기분은 좋은데 표랑 비교할 숫자는 못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재는 자세는 연구마다 다르다. 영국 쪽 표준 절차는 팔걸이 있는 의자에 앉아 팔뚝을 올려놓고 재고, 실제로 연구들 중에도 앉아서 잰 경우가 더 많았다. 어느 쪽이 맞다기보다, 비교하려는 표가 만들어진 방식에 내 자세를 맞추는 게 핵심이었다. 다음에 잴 때도 같은 자세, 비슷한 시간대로.
몸무게가 가벼운 편이면 절대 숫자만 보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국민체력100 성인 측정은 악력을 체중으로 나눠 100을 곱한 상대악력으로 본다. 기구가 없으면 국민체력100 체력인증센터에서 예약하고 무료로 잴 수 있다.
손만 쥐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숫자를 보고 나니 이게 수명이랑 어디까지 엮여 있는지 다시 궁금해졌다. 여성만 따로 본 수치가 있었다. 영국 40~69세 50만 명 넘게를 7년 넘게 따라간 UK Biobank 연구(BMJ 2018)에서 여성은 악력이 5kg 낮을 때마다 전체 사망 위험이 약 20% 높았다.
5kg. 평균보다 2kg 남짓 모자란 내 손이 괜히 신경 쓰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 데이터도 방향이 같았다. 중·고령자 9,229명을 10년 따라간 고령화연구패널 코호트 연구는 한국인의 건강한 노화를 위해 여성은 최소 16.8kg 이상을 지키자고 제시했다. 같은 패널을 쓴 다른 분석에서는 악력이 낮은 여성보다 중간 그룹이 26.4%, 높은 그룹이 48.3% 사망 확률이 낮았다더라. 계단처럼 딱 끊기는 선이 아니라 손힘이 셀수록 쭉 내려가는 비탈 같은 그림이다.
그래서 악력기만 열심히 쥐면 되느냐. 자료를 더 읽을수록 그렇게 단순한 얘기로 보이지 않았다. 이 연구들은 전부 관찰 연구라서, 손힘 자체가 수명을 늘린다는 게 아니라 손힘이 온몸의 근력, 먹는 것, 움직이는 양을 비춰 보여준다는 쪽에 가깝다. 손은 창문이고, 집은 따로 있는 셈이다. 손 운동만 따로 해서 좋아진다는 근거도 아직 약한 편이고.
오히려 눈에 들어온 건 조합이었다. 60세 이상 한국인을 본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에서 단백질을 충분히 먹으면서 근력운동까지 하는 사람이 약한 악력 위험이 낮았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폐경 무렵부터 에스트로겐이 줄면서 근력이 서서히 빠진다는 국내 연구도 있어서, 40대 후반 여성한테는 남 얘기로 넘길 수 없다.

그래서 바꾼 건 크지 않다. 주 두 번 하던 스쿼트 사이에 밴드 당기기를 끼웠고, 장보기 배송을 한 번 줄이고 장바구니를 직접 들고 온다. 끼니에 단백질 챙기는 건 근감소증 예방한다고 밥상을 바꿨을 때부터 하던 걸 이어가는 중이고. 악력계는 석 달 뒤 같은 자세로 다시 잡아보려고 달력에 적어뒀다. 혹시 여기서 18kg 아래로 떨어진다면 그건 40대로선 꽤 낮은 숫자니까, 그땐 혼자 판단하지 않고 진료를 보려고 한다. 근감소증은 악력 하나로 진단하지 않고 종아리 둘레, 걷는 속도, 근육량까지 함께 본다.
행주 한 장에서 시작한 얘기가 결국 내 손바닥으로 돌아왔다.
손이 먼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