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유전 결정론을 놓고 2025~2026년 두 편의 대규모 연구가 정반대처럼 보이는 결론을 내놨다. 한쪽은 “유전이 50%”라고 하고, 다른 쪽은 “환경이 유전보다 10배 중요하다”고 한다. 읽다 보면 응? 싶다. 근데 사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유전이 수명의 절반을 결정한다는 연구
2026년 1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 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가 Science에 발표한 연구다.
주저자 벤 쉔하르(Ben Shenhar)와 지도교수 우리 알론(Uri Alon)이 스웨덴·덴마크의 대규모 쌍둥이 코호트 3개를 분석했다. 함께 자란 쌍둥이와 따로 자란 쌍둥이 데이터 모두 포함됐다.
핵심 발견은 이렇다. 기존 쌍둥이 연구들이 수명 유전율을 낮게 잡아온 건 외재적 사망(extrinsic mortality) 때문이었다. 사고, 감염, 환경 재해처럼 노화와 아무 관계 없는 원인의 사망이 통계를 오염시키고 있었던 거다. 연구팀은 이걸 ‘생물학적 노화에 의한 내재적 사망’과 수학적으로 분리하는 새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그 결과가 내재적 수명의 유전율 약 50~55%다. 기존 정설이었던 ’20~25%’의 두 배가 넘는다.

질환별로 보면 차이가 있다. 치매의 유전적 기여도는 80세까지 약 70%로 가장 높고, 암은 유전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주저자 쉔하르는 이렇게 말했다. “유전가능성이 높다는 게 입증되면 수명 연장 유전자를 찾으려는 동기가 생기고, 노화 생물학을 치료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열린다.”
여기서 유의할 게 있다. ‘50%’는 유전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머지 50%는 여전히 생활습관과 환경이다. 카롤린스카연구소 전문가들은 이런 맥락을 덧붙였다. “환경이 변했지, DNA가 변한 게 아니다.” 백신·위생·의료의 발전으로 외재적 사망이 줄어들면서 유전적 차이가 통계에서 더 잘 보이게 된 것뿐이라는 해석이다.
환경이 유전보다 10배 중요하다는 연구
2025년 2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인구보건연구소(Oxford Population Health)가 Nature Medicine에 발표한 연구다.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참가자 약 5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164가지 환경 요인과 22개 주요 질환에 대한 유전적 위험 점수를 동시에 들여다봤고, ‘익스포좀(exposome)’ 접근법과 혈액 단백질 기반 생물학적 노화 시계를 활용했다.
결론은 이렇다.
| 요인 | 사망 위험 변동 설명 비율 |
|---|---|
| 환경 요인 | 약 17% |
| 유전적 소인 | 2% 미만 |
환경이 유전보다 약 10배 중요하다는 수치다.
사망·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 상위 5가지는 아래와 같다.
| 순위 | 요인 | 연관 질환 수 |
|---|---|---|
| 1 | 흡연 | 21개 |
| 2 | 사회경제적 지위 (소득·주거·고용) | 19개 |
| 3 | 신체활동 | 17개 |
| 4 | 거주 환경 | — |
| 5 | 초기 생애 노출 (10세 때 체중, 어머니 흡연 여부) | — |
확인된 독립적 환경 요인 25개 중 23개가 수정 가능한 요인이다. 즉 우리가 바꿀 수 있다.
질환마다 비율이 다른 것도 눈에 띈다. 폐암·간질환·류머티즘 관절염은 환경 요인이 지배적이고, 유방암·전립선암·알츠하이머·황반변성은 유전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둘이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유
측정한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연구는 전체 인구에서 사망 시점을 당기거나 늦추는 현실적 요인을 분석한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 무엇이 죽음을 부르는가”라는 질문이다.
와이즈만 연구는 외부 요인 사망을 제거한 뒤 ‘생물학적 노화 속도’에서 유전적 기여가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했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시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알고 보니 둘은 다른 걸 물은 거다.
흡연을 예로 들면, 흡연은 옥스퍼드 연구에서 단일 최대 수명 단축 요인이다. 평균 기대수명을 약 10년 깎는다. 이건 환경 요인이다. 동시에 같은 흡연량이어도 타고난 세포 복구 능력(유전)에 따라 폐암 발생률이 다르다. 두 연구가 각자의 층위에서 맞는 말을 하고 있다.

유전자도, 생활습관도 — 그 사이에 있는 것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두 세계를 잇는 다리다.
DNA 염기서열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유전자 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수십 년이 지나면 후성유전학적 차이가 생긴다. 흡연·운동·식단·수면이 DNA 메틸화 패턴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연구가 계속 쌓이고 있다.
DNA 메틸화 나이가 5년 가속될 때마다 사망 위험이 8~15% 증가한다는 데이터가 있고, 2025년 11월 체계적 문헌고찰에선 생물학적 노화가 가속된 개인은 뇌졸중 위험이 일관되게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출처: Epigenetic clocks: advancing biological age measures, PMC)
“유전이 50%를 결정한다”고 해도, 그 유전자 발현 자체가 행동에 의해 달라진다는 뜻이다.
장수와 연관된 주요 유전자들을 보면 맥락이 조금 더 명확해진다.
| 유전자 | 주요 기능 | 특이사항 |
|---|---|---|
| FOXO3 | 세포주기 조절, DNA 복구, 산화스트레스·염증 감소 | 모든 인종에서 장수와 가장 일관되게 연관 |
| APOE ε2 | 지질 대사 조절 | 알츠하이머 보호적, 장수와 연관 |
| APOE ε4 | 지질 대사 조절 | 알츠하이머 위험 증가, 수명 단축과 연관 |
| SIRT6 | 염색체 안정화, 대사 조절 | 당뇨병·염증·신경퇴행성질환 예방과 연관 |
2017년 영국 바이오뱅크 60만 6,000명 유전자 분석에서 확인된 7개 노화 유전자(HLA-DQA1, LPA, CHRNA, APOE, CDKN2A/B, SH2B3, FOXO3A)는 각 변이에 따른 수명 차이가 약 0.6~0.7년이었다. 유전자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그 폭이 무한하지 않다.
와이즈만 연구의 ‘50%’는 결국 이런 맥락이다. 유전자는 하한선과 상한선을 설정한다. 생활습관은 그 범위 안에서 실제 결과를 당기거나 늦춘다. 건강한 생활로 유전적으로 설정된 기대 수명에서 약 ±5년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
운동 하나만 봐도 그렇다. 주 150분 중강도(또는 75분 고강도) 운동 기준을 충족하면 전체 사망 위험이 21~31% 감소하고, 기대수명이 평균 3.9~4.4년 늘어난다. 수면은 2025년 OHSU 연구에서 식단·운동·고독감보다 사망 위험과 더 강하게 연관됐다. 흡연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출처: OHSU News, 2025-12-08)
건강한 생활습관 5가지를 모두 실천하면 1~2가지만 실천하는 사람 대비 평균 7.13년 수명이 늘어난다는 데이터도 있다.
부모님이 오래 사셨다면 좋은 출발선이다.
그 위에 뭘 쌓느냐는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