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부터 바꿔봐. 그게 제일 쉬워.”
동네 언니가 반찬통 돌려주면서 툭 던진 말이었다. 요즘 저속노화가 유행이라며, 자기는 흰쌀밥을 콩 넣은 잡곡밥으로 바꾼 게 시작이었다고. 나는 그냥 웃고 넘겼다. 밥 좀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었으니까.
근데 그날 저녁 밥솥을 여는데 그 말이 걸렸다. 하얀 쌀밥이 김을 폴폴 내는데, 이게 노화를 앞당기는 밥이라니. 저속노화라는 게 결국 노화 속도를 늦추자는 얘긴데, 외모를 젊게 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몸 안쪽이 마모되는 속도를 줄여 건강하게 지내는 기간을 늘리자는 쪽이라더라. 그러면 시작이 밥이라는 게 이해가 갔다. 하루 세 번, 제일 자주 만나는 게 밥이니까.
사실 요즘 부쩍 이런 게 눈에 들어온다. 같은 나이인데 누구는 팽팽하고 누구는 폭삭 삭는다. 40세 넘어가면서 이게 눈에 띄게 벌어지더라. 얼굴 나이로 봐도 같은 나이 사람들 사이에 편차가 크고, 특히 40세 이후로 개인차가 벌어진다고 한다. 남 얘기가 아니었다.
밥솥부터 열어서 콩을 부었다
그래서 다음 장 볼 때 서리태 한 봉지를 샀다. 검은콩. 렌틸콩이니 병아리콩이니 하는 건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고, 마침 집에 굴러다니던 서리태가 있었다.
정희원 교수가 저속노화 식단에서 가장 실천하기 쉬운 첫걸음으로 꼽은 게 “흰 쌀밥을 콩 많이 넣은 잡곡밥으로 바꾸기”라는 걸 나중에 코메디닷컴 인터뷰에서 봤는데, 여기서 좀 안심이 됐다. 콩 종류는 자유라더라. MIND 식사법에 자주 나오는 렌틸콩 병아리콩만 되는 게 아니라 강낭콩 완두콩 서리태 검은콩 다 된다고. 굳이 안 사도 되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원리는 이랬다. 흰쌀 밀가루 같은 정제 탄수화물은 혈당을 급하게 올리는데, 이런 밥이 반복되면 만성 염증이니 인슐린 저항성이니 하는 게 노화를 앞당기는 쪽으로 작용한다고. 반대로 현미 귀리 같은 통곡물은 혈당을 천천히 올린단다. 그러니까 뭘 끊으라는 게 아니라 밥의 재료를 바꾸는 거였다.

처음엔 콩을 한 줌 넣었더니 애가 골라냈다. 그래서 잡곡부터 조금씩 섞고 콩 비율을 천천히 올렸다. 밥이 좀 거칠어졌는데, 며칠 지나니 흰쌀밥이 오히려 밍밍하게 느껴지더라. 다이어트처럼 뭘 금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밥이 바뀐 거라 부담이 적었다. 예전에 저속노화 식단을 알고는 있는데 내 식탁을 들여다봤던 글을 쓸 때만 해도 실천은 못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밥솥 하나로 시작이 됐다.
밥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근육 앞에서 알았다
밥을 바꾸고 좀 뿌듯해하던 참에,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찼다. 몇 층 안 되는데.
그러고 보니 저속노화는 밥 하나가 아니라 생활 습관 묶음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정 교수가 이런 습관을 유지하면 노화 속도를 최대 두 배까지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는데, 그게 식사만이 아니라 절주 금연 스트레스 관리 수면 운동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얘기였다. 밥만 바꿔놓고 다 했다고 생각한 게 좀 머쓱했다.
근육 쪽을 찾아보니 숫자가 걸렸다. 서울대 국민건강지식센터에 따르면 50세 이상은 해마다 근육량이 1~2%씩 줄고, 80세가 되면 절반 가까이 잃는다더라. 그러니까 지금 안 붙들면 계속 빠지는 거다. 같은 자료에서 12주 이상 꾸준히 근력운동을 하면 항노화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줘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내가 헬스장 등록만 하고 안 가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이번엔 집에서 되는 것만 골랐다. 설거지하면서 한 발로 서 있기, 양치하는 동안 뒤꿈치 들기, 자기 전 스쿼트 열 개. 유연성 균형 유산소 근력 네 가지를 하루 10분 안에도 잡을 수 있다는 접근이 있어서, 무리하지 말고 저강도로 시작했다. 이 부분은 40대 밥상부터 바꿔 단백질과 하체 운동을 챙겨본 이야기랑도 이어졌다. 결국 밥과 근육은 따로 노는 게 아니었다.

핵심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짧고 굵게보다 오래 꾸준히.” 하루 몰아서 죽어라 하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이 낫다는 거. 나 같은 작심삼일형한테는 이게 위안이었다.
잘 자야 나머지가 굴러간다
밥 바꾸고 몸도 좀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계속 피곤했다. 알고 보니 밤에 잘 못 자고 있었다.
이게 저속노화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오히려 밥이나 운동만큼 중요한 축이었다. 잠이 부족하면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분비가 늘어난다더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을 보면 코르티솔이 오래 과다 분비되면 근력 감소 지방 증가 면역 저하 인슐린 저항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잠을 놓치면 애써 붙든 근육도 밥도 새는 쪽으로 흘러가는 셈이었다.
권장은 하루 7~8시간. 실천이라고 해봐야 대단할 것도 없었다. 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을 그냥 비슷하게 맞추고, 자기 전에 커피랑 폰을 좀 멀리했다. 온수 목욕이나 이완 같은 건 나도 아직 잘 못 지킨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게 습관이라는 거지 뭐.
이 대목에서 스스로 좀 웃겼다. 저속노화 하겠다고 밥 바꾸고 스쿼트 하면서 새벽 한 시까지 폰을 붙들고 있었으니. 순서가 반대였던 셈이다. 잠부터 챙겼어야 나머지가 버티는 거였는데. 초가공식품에 고당분에 수면 부족에 앉아만 있는 생활이 겹치면 3040 세대에서도 노화가 빨라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편하다는 이유로 하나씩 골라온 것들이 쌓인 결과라는 거다. 반대로 저속노화는 건강한 쪽을 매번 조금씩 선택하는 거고.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작은 선택이라는 게 이제 좀 와닿았다.
처음엔 밥 수면 운동 스트레스를 다 완벽하게 갖춰야 하는 줄 알았다. 부담스러워서 시작을 못 했던 거고. 지금에야 생각하면 그게 아니었다. 넷 다 맞물려 있으니 오히려 하나만 건드려도 옆 것이 딸려 온다. 밥을 바꾸니 몸을 움직이고 싶어졌고, 움직이니 잠이 아쉬워졌다. 완벽하게 갖추는 게 아니라 하나부터 굴리는 거였다.
그래서 오늘도 별건 없다. 저녁에 서리태 넣고 밥솥 버튼 누르고, 설거지하면서 한 발로 좀 서 있어보고, 자정 넘기기 전에 폰을 내려놓는 것. 딱 거기까지. 밥 물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