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잤는데 개운하지 않다.
이 한 줄로 검색해본 적 있다. 8시간을 잔 날도, 9시간을 잔 날도 아침이 무거웠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수면의 질이 나쁜 건가. 뭔가 더 있는 건가. 그게 궁금해서 이래저래 찾아봤다.
파고들수록 이유가 하나가 아니었다.

수면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더라
제일 처음 알게 된 건 이거였다.
8시간을 잤는데도 피곤하다는 게, 꼭 8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케임브리지대학교와 베이징대학교가 약 50만 명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인지 기능이 가장 높게 나온 건 7시간 수면 집단이었다. 7시간보다 적어도, 많아도 다 떨어졌다. 딱 U자였다.
그러니까 9시간 자고 흐뭇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 그게 오히려 뇌를 더 빨리 늙히고 있었다는 거다.
아니, 정확히는 수면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어떤 수면이 이루어지느냐가 달랐다.
잠의 구조가 무너지고 있었다
열대야가 시작되고 나서 유독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8시간을 누웠는데 아침이 더 허무한 그 느낌.
이유가 있더라. 잠드는 건 피곤해서가 아니라 체온이 충분히 내려갔을 때 시작된다. 저녁이 되면 시상하부가 신호를 보내 핵심 체온을 낮추고, 그게 졸음의 진짜 트리거다. 근데 밤 최저 기온이 25℃를 넘어가면 그 냉각 경로 자체가 막힌다.
8시간을 누워 있어도 몸은 제대로 쉬지 못한 셈이다.
더 골치 아픈 건, 이게 REM 수면을 찢어놓는다는 거였다. REM 수면 중엔 체온 자율 조절이 거의 꺼진다. 주변 온도에 그대로 노출되는 상태. 열대야 기간엔 REM 수면이 반복적으로 짧아지고, 그러면 감정 처리나 기억 통합이 제대로 안 된다. 시간은 채워도 회복이 안 되는 거다.
여기까지 알고 나서, 그럼 수면 시간을 늘리면 해결되는 건가 싶었다.
그게 또 아니었다.

주말에 몰아 자면 더 나빠질 수 있다
평일에 부족하게 잔 잠을 주말에 한꺼번에 갚으려 한 적이 많다. 그게 몸에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실제로 주말에 열 시간씩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더 무거운 날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너무 많이 잤나” 싶었는데,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거다.
2019년 콜로라도 대학교 연구가 있다. 주중에 5시간 자고 주말에 몰아 잔 그룹의 인슐린 민감성이 27% 감소했다. 체중이 늘었고, 늦은 시간대 칼로리 섭취가 늘었다. 일부 지표는 만성 수면 부족 그룹보다도 나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냐면, 주말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생체 시계가 흔들리는 거다. 소셜 제트래그(Social Jetlag). 평일 7시에 일어나고 주말 10시에 일어나면, 몸은 매주 서울에서 도쿄로 왕복하는 셈이다.
영국에서 6만 명을 8년 추적한 연구에서 수면 규칙성 지수가 높은 그룹은 전체 사망 위험이 최대 48% 낮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발견이 있었다. 수면 규칙성이 수면 지속 시간보다 사망 위험의 더 강력한 예측 변수였다는 것.
얼마나 오래 자느냐보다 얼마나 규칙적으로 자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머리로는 이해됐다. 그런데 그걸 알고 나서도 주말엔 늦게 잠들었다.
몸이 피곤한데 눈이 말똥말똥한 이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이게 가장 나한테 해당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코르티솔이 정상이라면 아침에 가장 높다. 기상 직후 오전 6~8시 사이에 하루 분비량의 절반 이상이 쏟아지면서 몸을 깨운다. 그리고 낮에는 서서히 내려가고, 밤엔 아주 낮아져서 멜라토닌이 올라올 자리를 만들어준다.
코르티솔이 낮아야 멜라토닌이 높아진다. 멜라토닌이 높아야 잠이 온다.
근데 만성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 리듬이 뒤집힌다. 아침엔 낮고, 밤엔 오히려 높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을 것 같고, 밤에는 머릿속이 또렷하다. 몸은 축 처져 있는데 눈은 말똥말똥한 그 상태 — Tired but Wired.
게다가 40대 여성은 에스트로겐이 줄면서 코르티솔이 반대로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부신이 에스트로겐 보완 역할까지 떠맡으면서 과부하가 걸린다. 수면을 도와주는 호르몬들은 줄고 코르티솔은 올라가는 이중 타격이다.
9시간 잔 것처럼 보이는데 몸은 4시간 잔 것처럼 느껴지는 게 기분 탓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뭘 바꿔야 하나
실제로 해보니 기상 후 커튼부터 여는 것만 꾸준히 했는데도 뭔가 달랐다. 대단한 변화가 아니라 그냥 빛이 먼저라는 순서가 바뀐 것뿐이었는데.
거창한 게 필요하지 않다더라.
체온 문제는 — 잠들기 1~2시간 전에 40~42℃ 따뜻한 물로 10분 이상 샤워하는 것. 냉찜질이나 찬물이 아니라 따뜻한 물이 맞다. 샤워 후 체열이 빠르게 방출되면서 핵심 체온이 급하강하는데, 이게 자연적인 수면 신호를 흉내 낸다.
리듬 문제는 — 기상 후 30분 안에 자연광에 10~20분 노출되면 뇌의 시계가 리셋된다. 그리고 주말이라도 평일 기상 시간에서 1시간 이상 밀리지 않는 것.
코르티솔 문제는 — 밤 11시 전에 눕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햇빛을 먼저 본다. 오후 2시 이후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혈당이 출렁이면 코르티솔이 올라가니 밥을 거르지 않는다.
알고 나서도 안 고쳐지는 게 습관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모르고 하는 것과 알고 하는 건 다르다. 9시간 자고 일어나서 찝찝했던 게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는 것, 주말에 몰아 자는 게 빚을 갚는 게 아니었다는 것, 밤에 말똥말똥한 게 의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몸이 버텨야 나머지가 된다.
어찌됐든.
참고: 수면 시간과 인지 기능은 Nature Aging 2022 논문, 주말 보충 수면은 Current Biology 2019 논문, 수면 규칙성과 사망위험은 Sleep 2024 논문을 기준으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