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길었던 날, 저녁 설거지 끝내고 냉장고 문을 여는 손이 맥주 캔으로 갔다. 딱 한 캔. 이거 마시면 나른하게 잘 자겠거니, 그렇게 오랫동안 믿었다. 실제로 눕자마자 눈이 감기니까. 자기 전 술 한 잔이 잘 자게 해주는 줄 알았는데, 며칠 스마트워치 수면 점수를 들여다보다 이상한 걸 알게 됐다. 술 마신 날일수록 점수가 더 낮았다.
빨리 잠드는 것과 잘 자는 건 다른 문제였다
분명히 빨리 잠들었다. 그건 착각이 아니다. 알코올은 처음엔 진정·수면유도제처럼 작동해서,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수면 전반부의 깊은 잠을 잠깐 늘린다. 뇌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 작용을 강화해 각성을 낮추기 때문이라더라. 그러니까 눕자마자 눈이 감긴 게 기분 탓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한동안은 “봐, 술이 도움이 되잖아” 했다. 며칠 지나서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진정 효과는 초반 한 시간 정도에만 살짝 도움이 될 뿐이고, 보통 일곱 시간을 잔다고 하면 술은 그 뒤의 다섯, 여섯 시간을 흔들어놓는다. 서울대 국민건강지식센터가 인용한 성인 설문 연구에서는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음주와 유의한 상관성조차 없었다고 나온다. 실험실에서 급성으로 마시면 빨리 잠드는데, 일반 사람들을 넓게 조사하면 그 통념 자체가 흔들리는 셈이다.
빨리 잠드는 것과 푹 자는 건 애초에 다른 문제였다. 나는 앞쪽 한 시간만 보고 술이 좋다고 판단했던 거고.

새벽 3시에 눈이 떠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술 마신 날, 유독 새벽 두세 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다시 눕는데 심장이 괜히 또렷하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그냥 나이 탓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알코올은 밤 전반부에 렘(REM)수면을 용량에 비례해 억제한다. 렘수면은 기억을 정리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니까, 이게 눌리면 다음 날 머리가 무겁고 집중이 안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Sleep Foundation에 따르면 밤이 진행돼 알코올이 분해되기 시작하면 억눌렸던 렘수면이 반동처럼 몰려온다. 대한수면의학회도 이 렘수면 반동이 새벽녘 악몽을 늘린다고 설명한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이때 교감신경이 다시 켜지고 코티솔이 올라가면서 잠이 조각조각 끊긴다. 새벽 2~3시에 깨는 게 딱 이 지점이다.
여기에 하나 더. 알코올은 항이뇨호르몬을 억제해서 소변을 자주 마렵게 만든다. 저녁에 마신 술이 밤새 이뇨 작용을 이어가니, 겨우 얕게 자다가 화장실 때문에 또 끊긴다. 처음엔 진정제였다가 대사되면서 방해꾼으로 바뀌는, 말하자면 얼굴이 두 개인 셈이다. 그러니 새벽에 개운하게가 아니라 찝찝하게 깨는 거였다.
코 고는 소리가 커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남편이 그러더라. 술 마신 날 코 고는 소리가 훨씬 크다고.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가 했는데, 이것도 술이었다.
알코올은 혀와 목 주변 근육을 이완시키고 기도 저항을 높인다. 동시에 숨이 막혔을 때 깨어나 다시 숨 쉬게 하는 뇌의 각성 반응을 눌러버린다더라. 그래서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이 있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산소가 평소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국내 설문 연구에서도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이 알코올 섭취량에 비례해 늘면서 수면의 질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고 확인됐다. 근육이 늘어지는 것까지는 어렴풋이 알았는데, 막힌 순간에 깨는 반응마저 무뎌진다는 건 몰랐다. 이게 좀 무서운 대목이었다.

그럼 몇 시간 전에 끊어야 하나
결국 궁금한 건 이거였다. 마시지 말라는 건 알겠는데, 마신다면 언제까지.
대략의 경험칙은 표준잔 한 잔당 한 시간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잠들기 전 혈중알코올농도를 낮춰두는 게 목표라서 두 잔이면 두세 시간, 넉 잔이면 네다섯 시간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을 마시거나 잠을 잔다고 이 속도가 빨라지진 않는다더라. 전문가 권고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 상황 | 기준 |
|---|---|
| 취침 전 금주 시점 | 최소 3~4시간 전 마무리 |
| 대사 속도 | 표준잔 1잔당 약 1시간 |
| 안전한 음주량 | 소량에서도 렘수면 교란, 확실한 하한선 없음 |
특히 마지막 줄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최신 리뷰에서는 약 두 잔 수준의 낮은 용량에서도 렘수면 교란이 나타나고, 술이 렘을 안 건드리는 하한선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양을 줄이면 손상도 줄지만 “이만큼은 괜찮다”는 선은 없다는 얘기다. 저녁 카페인을 몇 시까지 마셔도 되나 따져봤을 때랑 비슷한 결론이었다 — 오후 카페인을 몇 시에 끊어야 밤잠에 안 걸리는지 계산해봤던 그때도, 결국 시간을 벌어두는 게 답이었다.
나는 여기까지 확인하고, 마시더라도 잠들기 서너 시간 전에는 끝내는 걸로 바꿔봤다. 자기 전 마지막 한 캔 대신, 미지근한 물 한 컵으로. 완벽하진 않다. 어떤 날은 그냥 한 잔 하고 싶으니까.
다만 술기운에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이 곧 새벽 3시의 또렷한 심장으로 돌아온다는 걸, 이제 몸이 먼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