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가 되면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온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것도 아닌데 모니터 글자가 두 겹으로 보이고, 마우스를 쥔 손이 자꾸 느려진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려도 그때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 낮잠으로 이 시간을 넘겼는데, 정작 낮잠 시간을 얼마로 두느냐에 따라 오후가 살기도 하고 통째로 무너지기도 했다.
낮잠 몇 분이 딱인지, 나는 알람을 몇 번이나 바꿔가며 몸으로 확인했다. 그 순서대로 적어본다.
10분에서 시작해 20분까지 올려봤다
처음엔 10분만 눈을 붙여봤다. 짧다 싶었는데 의외로 깨고 나면 세상이 한 톤 밝아졌다. 한 연구에서 10분 낮잠만으로도 각성도와 집중이 바로 올라가고 그 효과가 두 시간 넘게 갔다는 결과가 있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손이 다시 빨라지고 오후 회의가 덜 버거웠다.
그다음 15분, 20분으로 조금씩 올려봤다. 메이오 클리닉은 낮잠의 이상적인 길이를 15~30분으로 본다. 미국 수면재단도 이른 오후의 15~20분 낮잠에서 인지 기능과 수행 능력이 좋아진다고 짚는다. 미국수면의학회가 권하는 것도 20~30분짜리 짧은 파워냅이다.
이유는 잠의 깊이에 있더라. 10~20분이면 가장 얕은 잠 단계에 머물러서 깨기가 쉽고 개운하다. 30분을 넘기면 깊은 잠으로 내려가는데, 그 바닥에서 억지로 깨면 몸이 못 따라온다. 나도 예전에 30분 넘게 자고 물먹은 이불처럼 무거웠던 날이 많았다. 그 이야기는 예전에 따로 정리해뒀다 — 낮잠 자고 더 피곤했던 이유, 파워냅은 20분이 끝이었다.

언제 자느냐가 몇 분보다 먼저였다
시간을 20분에 맞춰도 어떤 날은 밤에 잠이 안 왔다. 알고 보니 낮잠을 몇 시에 자느냐를 안 따진 탓이었다.
전문가들이 꼽는 최적 낮잠 시간대는 오후 1~3시다. 이 시간엔 몸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구간이 온다. 심부 체온이 살짝 내려가고 잠을 부르는 멜라토닌이 오르면서 나른해지는 건데, 점심 먹고 졸린 게 꼭 밥 탓만은 아니었던 거다. 하버드 헬스도 이 오후 1~3시를 낮잠 권장 시간으로 든다.
반대로 오후 3시가 넘어 자면 밤잠을 흐트러뜨린다. 나는 오후 4시쯤 소파에서 깜빡 졸았던 날이면 어김없이 밤 12시가 넘도록 눈이 말똥말똥했다. 낮잠이 밤잠을 앞당겨 쓴 셈이었다. 급하게 잠깐 눈만 붙일 거라도, 3시 전에.
진짜 급할 땐 커피를 먼저 마셨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20분 잘 여유는 있는 날, 커피냅을 써봤다. 커피를 마시고 곧바로 20분 눕는 거다. 처음엔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커피 마시고 어떻게 자.
그런데 원리가 있더라. 카페인은 마신 뒤 뇌에 도달해 효과가 나기까지 20분쯤 걸린다. 그사이 짧은 낮잠이 그때까지 쌓인 졸음(아데노신)을 걷어내고, 깰 때쯤 카페인이 딱 정점에 오른다. 수면재단에 따르면 카페인과 낮잠을 각각 따로 했을 때보다 둘을 붙였을 때 각성 효과가 더 컸다. 실제로 커피냅을 한 날이 그냥 낮잠만 잔 날보다 오후가 훨씬 또렷했다. 다만 카페인이 밤잠에 걸리지 않게, 이것도 오후 이른 시간에만.

긴 낮잠이 위험하다는 말에 겁먹었다가
낮잠 이야기를 찾다 보니 겁이 좀 나는 대목을 만났다. 낮잠이 길면 심혈관질환·사망 위험과 연관됐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을 넘는 낮잠이 낮잠 안 자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 약 1.2배, 심혈관질환 위험 1.3배쯤과 연관됐다는 코호트 연구 메타분석이 있다. 게다가 이 연관은 여성에게서 더 뚜렷했다더라. 40대 여성으로서 등골이 좀 서늘했다.
며칠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같은 연구에서 한 시간 미만 낮잠은 사망·심혈관 위험과 유의미한 연관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관찰 연구라 “긴 낮잠이 병을 만든다”기보다 “이미 몸이 안 좋은 사람이 낮에 길게 자게 된다”는 역방향 해석도 가능하다. 긴 낮잠 자체를 병의 원인으로 단정할 근거는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겁먹을 대목이 아니라, 오히려 결론이 더 단순해졌다. 어차피 짧게 자면 되는 거였다.
낮잠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맞춰놓고도, 어떤 날은 낮잠 없이는 오후가 도저히 안 굴러갔다. 그럴 땐 낮잠 길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메이오 클리닉은 낮잠이 평소보다 자꾸 필요하거나 아침에 일어나도 계속 졸리고 피곤하면 의료진 상담을 권한다. 낮 동안의 심한 졸음은 수면 부족이나 수면무호흡 같은 원인이 숨어 있을 수 있어서다. 낮잠은 밤잠을 보조하는 거지 대신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그제야 와닿았다.
나도 한동안은 낮잠으로 밤잠 부족을 메우고 있었다. 근데 그건 빚 돌려막기였다. 낮잠으로 오후를 사는 날이 늘면, 낮잠 몇 분을 따지기 전에 밤에 몇 시간을 어떻게 자고 있는지부터 봐야 했다.
오후를 안 무너뜨리는 낮잠은 결국 오후 1~3시, 20분, 알람. 이 셋으로 정리됐다. 다만 그걸로도 오후가 계속 무겁다면, 답은 낮에 없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