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쯤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는데, 꿈을 꾼 것도 아니고 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머리가 또렷했다. 심장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잠은 분명 잘 들었다. 열두 시 좀 넘어 누워서 별 뒤척임 없이 잤는데, 딱 이 시간에 눈이 떠진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다시 자려고 눈을 꾹 감고 누워 있는데, 감으면 감을수록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새벽에 자꾸 깨는 이유가 뭘까 싶어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이게 나만 게을러서도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다시 자려고 애쓴 30분이 오히려 잠을 쫓았다
깼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시계를 보는 거였다. 폰을 켜서 확인하니 3시 12분. 그 순간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된다. ‘아 세 시간 좀 넘게 잤네, 이제 세 시간 남았나, 지금 다시 못 자면 내일 회의 어떡하지.’ 이 계산이 시작되면 그때부턴 잠이 아니라 초조함이 몸을 지배한다. 눈을 감고 어떻게든 자보려고 애쓸수록 더 말짱해졌다.
나는 이게 내 노력 부족인 줄 알았다. 마음을 비우면 될 텐데 비우질 못하는 거라고. 아니었다. 찾아보니 이건 노력할수록 실패하는 종류의 일이었다. 한 번 깬 뒤 시계를 보는 순간 “벌써 몇 시야, 몇 시간밖에 못 자겠네” 하는 불안이 각성을 키우고, 침대에 누워 “왜 못 자지” 하고 애쓸수록 뇌가 침대를 잠자리가 아니라 각성과 좌절의 자리로 학습한다고 한다. Cleveland Clinic은 이걸 조건화된 각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내가 이불 속에서 이 악물고 버틴 30분이, 다음 날 밤 나를 또 깨우는 연습이었던 셈이다.
용어로는 이게 수면 유지 장애다. 잠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자다가 자주 깨는 유형.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불면증은 잠들기 어려운 입면 장애, 자는 도중 자주 깨는 수면 유지 장애, 너무 일찍 깨는 조기 각성으로 나뉜다. 나는 두 번째였다. 처음 잠드는 건 멀쩡한데 딱 중간이 무너지는 거.

40대부터 유독 잘 깨는 건 몸이 달라져서다
여기서 좀 억울했던 부분. 예전엔 안 이랬다. 이십 대, 삼십 대 초반엔 한번 자면 아침까지 통으로 잤다. 그런데 마흔 넘고부터 밤이 자꾸 조각난다. 이게 내가 나이 들면서 관리를 안 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몸의 구조 자체가 바뀌는 거였다.
나이가 들면 수면 구조가 실제로 변한다. Neuron에 실린 수면과 노화 연구를 보면, 젊을 때보다 얕은 수면 단계와 각성으로의 전환이 늘고, 잠든 뒤 깨어 있는 시간이 증가하며, 깊은 서파수면이 줄어 잠이 더 잘게 조각난다. 한마디로 예전보다 얕고 잘 깨지는 잠이 되는 거다. 마흔 즈음이 딱 그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라더라. 그러니 작은 소리나 사소한 각성 신호에도 예전보다 쉽게 눈이 떠진다. 노년기에는 밤에 평균 서너 번 깬다는 서술도 있는데, 그건 고령자 기준이고 40대는 그 앞 단계로 이해하면 된다.
여성이라면 하나가 더 붙는다. 갱년기 무렵 에스트로겐이 줄면 체온 조절이 예민해지고 야간에 열감이나 발한이 생겨 잠을 깨우는 요인이 된다. 이 호르몬 이야기는 예전에 갱년기 불면증이 의지가 아니라 호르몬 문제였다는 글에 따로 정리해뒀는데, 새벽에 유독 잘 깬다면 이 결이 섞여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럼 나 갱년기네” 하고 스스로 단정할 일은 아니다. 개인차가 크고 그건 병원에서 볼 몫이니까. 나는 그냥,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몸이 달라져서 그렇다는 것만으로도 좀 덜 자책하게 됐다.
새벽 3시 무렵이 유독 위험한 이유도 있다. 코르티솔이라는 각성 호르몬은 자정 무렵 가장 낮았다가 새벽 두세 시부터 서서히 올라 기상 시각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진다. 원래 아침에 잘 일어나라고 몸이 준비하는 신호인데, 스트레스가 많으면 이 신호가 원래보다 이른 새벽에 강하게 와서 완전히 깨버릴 수 있다고 한다. “3시에 깼으니 코르티솔 문제다” 하고 단정할 건 아니지만, 왜 하필 그 시간인지는 조금 설명이 된다.
시계부터 돌려놨더니 달라진 것
그래서 뭘 바꿨느냐. 거창한 건 없다. 제일 먼저 한 건 머리맡 시계를 돌려놓고 폰을 침대에서 좀 떨어진 데 둔 거다. 깼을 때 시간을 확인하는 그 동작 하나가 불안 계산의 방아쇠라니까, 아예 못 보게 만들었다. 이게 Harvard Health에서도 권하는 방법이더라.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을 모르니 계산이 안 시작되고, 계산이 안 되니 초조함도 덜 올라왔다.
두 번째는 좀 반대로 가는 거였다. 20분쯤 누워서 다시 못 자겠다 싶으면 침대에서 나온다. 거실로 나가 불을 최대한 낮추고 잔잔한 책을 몇 장 읽거나 조용히 앉아 있다가, 진짜 졸음이 다시 올 때 눕는다. 처음엔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자야 하는데 왜 일어나. 그런데 이게 불면증 표준 치료로 꼽히는 인지행동치료(CBT-I)의 자극조절요법 핵심이라더라. 침대는 잠자는 곳이라는 연결을 되살리고, 침대에서 애쓰며 좌절하는 연결을 끊는 거다. 대한의사협회지도 CBT-I를 불면증의 표준 치료로 소개한다. 며칠은 오히려 더 피곤했는데, 이삼 주 지나니 새벽에 깨도 예전만큼 오래 깨어 있진 않게 됐다.
물론 여기 함정도 하나 있었다. 새벽에 못 잔 게 억울해서 저녁에 일찍 눕거나 낮에 졸다 보면, 그날 밤 수면 압력이 떨어져 다시 새벽에 말짱하게 깨더라. 잠을 아껴 모았다가 밤에 쓴다는 감각이 나한테는 더 맞았다. 카페인은 오후부터 끊었고, 밤에 각성을 늘린다는 술도 자기 전엔 피했다.
한 가지만 짚자면, 이게 병인지 아닌지는 따로 있다. 새벽에 깨서 다시 못 자는 일이 주 3회 이상, 3개월 넘게 이어지고 낮에 피곤해서 생활에 지장이 있으면 그건 만성 불면장애로 볼 수 있어 진료가 필요하다. 심한 코골이나 자다 숨이 멎는 걸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라 병원에서 봐야 한다. 나처럼 그냥 좀 얕아진 잠이라면 위의 것들로 대부분 버텨진다.
새벽에 잠은 여전히 가끔 깬다. 다만 이제는 깼을 때 시계를 안 본다. 그거 하나로 다시 잠들기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솔직히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