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점심을 먹고 소파에 잠깐 누웠다. 20분만. 눈만 좀 붙이자 했는데 깨어 보니 오후 3시가 넘어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잔 거다. 그런데 개운하기는커녕 머리가 솜에 눌린 것처럼 무겁고, 몸이 물먹은 이불 같았다. 커피를 내려 마셔도 한동안 멍했다. 이럴 거면 왜 잤나 싶었다.
낮잠을 자고 더 피곤했던 날이 그날만은 아니다. 나는 오래 그걸 내 체질 탓으로 돌렸다. 낮잠 체질이 아닌가 보다, 하고. 근데 알고 보니 체질이 아니라 시간 문제였다.
낮잠 자고 더 멍한 건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깨고 나서 축 처지는 그 느낌에 이름이 있더라. 수면 관성(sleep inertia). 낮잠에서 깬 뒤 멍하고 나른하고 오히려 더 피곤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미국 수면재단(Sleep Foundation)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긴 낮잠에서 깼을 때 흔히 겪는, 몽롱하고 축 처지는 느낌.
왜 생기냐면, 낮잠이 30분을 넘어 뇌가 깊은 잠에 들어간 뒤 그 상태에서 억지로 깨기 때문이다. 잠은 얕은 잠에서 시작해 깊은 잠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데, 한창 바닥까지 내려가 있을 때 알람이 울리면 몸이 못 따라온다. 그러니까 그날 내가 물먹은 이불 같았던 건, 딱 그 깊은 잠 구간에서 깨서였던 거다.
여기서 마음이 좀 놓였다. 게을러서, 체력이 없어서 낮잠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냥 너무 길게 잤을 뿐이라는 것. 시간만 조절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래서 몇 분이 딱 좋은가
10분에서 20분. 이게 여러 수면 기관이 공통으로 권하는 파워냅 길이다. 뇌가 아직 깊은 잠으로 내려가기 전, 얕은 잠 구간에서 깨기 때문에 밤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피로만 덜어낸다.
숫자를 보고 좀 놀랐던 건 10분과 30분의 차이였다. 10분과 30분 낮잠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10분 낮잠은 수면 관성이 아예 없었던 반면 30분 낮잠은 깬 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멍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이왕 자는 거 좀 더 자자” 하고 30분, 한 시간씩 자면서, 회복은커녕 함정 구간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던 셈이다.
아니, 정확히는 30분이 문제가 아니라 30분을 넘어가며 깊은 잠에 진입한 게 문제다. 20분 안쪽에서 끊으면 그 구간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낮잠을 잘 때는 무조건 휴대폰 알람을 20분 뒤로 맞춰둔다. 자다 깊이 빠질까 봐서다. 넉넉히 잡아도 30분은 안 넘긴다.
효과가 얼마나 되냐면, 짧은 낮잠 하나로 각성도랑 기분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더라. 수면재단이 소개한 NASA 연구에서는 조종사들이 평균 26분쯤 낮잠을 잤더니 수행 능력이 34%, 각성도가 54% 올랐다고 한다. 다만 이건 장거리 비행으로 심하게 지친 전문직 대상 결과라서, 잘 쉰 사람이 26분 자면 자동으로 능률이 34% 뛴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했다. 짧게, 깊이 빠지기 전에.
3시 넘어 자면 밤잠을 도둑맞는다
시간만큼 중요한 게 언제 자느냐였다. 나는 이걸 몰라서 저녁 무렵에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정작 밤에 침대에 누우면 눈이 말똥말똥했다. 낮에 잔 걸 밤에 고스란히 갚는 식이었다.
낮잠 자기 좋은 시간대는 대체로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다. 점심 먹고 나서 몸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처지는 구간이라, 이 골짜기에 맞춰 자면 리듬을 거스르지 않고 충전할 수 있다더라. 반대로 3시가 넘어가면 곤란해진다.
이유가 재밌었다. 우리가 아침에 깬 순간부터 뇌에는 졸음을 만드는 물질이 조금씩 쌓인다. 이게 하루 종일 쌓여서 밤에 충분히 차야 잘 잔다. 일종의 잠 빚 같은 건데, 오후 늦게 낮잠으로 이 빚을 미리 써버리면 밤에 갚을 게 줄어든다. 그래서 밤잠이 얕아지는 거다. 저녁에 졸다가 밤에 눈 말똥말똥했던 게, 낮에 이미 빚을 당겨 쓴 탓이었던 셈이다. 이 오후 카페인이 밤잠을 미는 원리랑도 비슷한데, 오후 카페인을 몇 시까지 마셔도 되는지 따져본 글에서 정리한 적이 있다.

커피 마시고 바로 자는 게 말이 되나 했는데
낮잠 방법을 찾아보다 제일 어이없었던 게 커피 낮잠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곧장 잔다니. 잠 깨려고 마시는 걸 마시고 자라니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원리를 보니 말이 됐다. 카페인은 마신 뒤 20~30분쯤 지나야 몸에 돌기 시작하는데, 이 시간이 딱 낮잠 길이랑 겹친다.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15~20분 자고 일어나면, 깰 때쯤 카페인이 막 작동하기 시작해서 낮잠 효과랑 카페인 효과가 같이 온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설명으로는, 낮잠이 뇌에 쌓인 졸음 물질을 비워주기 때문에 자고 나면 카페인이 더 잘 들기까지 한다.
반신반의하며 한번 해봤다. 점심 먹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후루룩 마시고 바로 소파에 20분 알람. 솔직히 처음엔 카페인 때문에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어차피 아직 몸에 안 도니까 그냥 잠들더라. 그리고 일어났을 때, 평소 낮잠보다 확실히 덜 멍했다. 두 가지가 같이 도와주는 느낌. 다만 이것도 3시 넘어서는 안 한다. 밤잠 망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낮잠이 자꾸 길어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야만 버틸 만큼 피곤하다면 그건 낮잠 기술로 해결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긴 낮잠을 자주 자는 사람일수록 건강 지표가 나빴다는 추적 연구들이 있는데, 낮잠이 병을 만든다기보다 몸 어딘가 피로가 쌓여 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다. 짧은 낮잠은 회복 도구지만,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 않고 계속 눕고 싶다면 한 번쯤 병원에서 확인해보는 게 낫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낮잠을 잘 쓰는 것만큼 낮잠에 자꾸 기대게 되는 상태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지난주 일요일엔 점심 먹고 20분만 알람 맞추고 소파에 누웠다. 깨어보니 정확히 20분. 머리가 가벼웠고, 오후가 또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