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에 냉장고 문을 여는 게 습관이었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손이 갔다. 남은 밥에 김치, 아니면 아이가 남긴 치킨 한 조각. 그렇게 먹고 자면 다음 날 아침이 유독 무거웠다. 얼굴은 붓고, 속은 더부룩하고, 그런데도 또 밤이 되면 냉장고 앞이었다.

바꾼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저녁을 그냥 좀 일찍 먹기로 했다. 여섯 시 반쯤 마지막 끼니를 끝내고, 다음 날 아침은 열한 시나 돼서 먹었다. 계산해보니 공복이 얼추 열여섯 시간. 요즘 말로 하면 시간제한 식사 16:8이 그렇게 됐다. 처음엔 노화가 어쩌고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아침이 덜 무거웠으면 해서였다.
16시간 굶은 게 아니라, 밤에 안 먹은 거였다
한동안 스스로 “나 요즘 간헐적 단식 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자료를 좀 찾아보니 내가 한 건 정확히는 그것과 조금 결이 달랐다.
간헐적 단식이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종류가 여럿이다. 하루 먹는 시간을 여덟 시간으로 좁히는 게 16:8, 주 이틀만 적게 먹는 5:2, 하루씩 걸러 굶는 격일 단식. 하버드 헬스가 정리한 걸 보면 이 중 매일 하는 16:8이 가장 흔하다. 그리고 내가 한 건, 그 식사 시간을 하루의 앞쪽으로 당긴 쪽이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밤을 비운 것. 연구자들은 이걸 ‘조기 시간제한 식사(eTRF)’라고 부른다더라.
그러니까 핵심은 ‘열여섯 시간을 굶었다’가 아니라 ‘밤에 안 먹었다’였던 거다. 이 차이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뒤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계속 걸린다.
살이 쭉 빠지진 않았는데 아침이 가벼워졌다
솔직히 말하면 체중계 숫자는 크게 안 변했다. 두 주쯤 지나 눈에 띄게 빠졌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드라마는 없었다. 대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이 편했다. 붓기가 덜했다. 그거 하나로도 밤 냉장고를 참을 이유가 됐다.
찾아보니 내 몸이 느낀 게 영 근거 없는 착각은 아니었다. 과체중·비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2025년 Frontiers in Nutrition 메타분석에서는 시간제한 식사가 체중을 평균 2kg 정도, 공복 인슐린을 조금 낮췄다. 숫자만 보면 크지 않다. 그런데 그 밑을 보면 혈당이나 인슐린 같은 대사 지표가 부드러워지는 쪽으로 움직인다. 읽고 나서야, 아 내가 느낀 ‘가벼움’이 저 근처였겠구나 싶었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언제 먹느냐’였다. 전당뇨 남성을 대상으로 한 2018년 Cell Metabolism 연구에서는, 먹는 양을 똑같이 맞췄는데도 식사창을 오후 세 시 이전으로 당긴 사람들의 인슐린 민감성과 혈압이 좋아졌다. 덜 먹어서가 아니라 타이밍 때문이었다는 거다. 다만 이건 남성 여덟 명, 오 주짜리 소규모 연구다. 나 같은 40대 여성한테 그대로 옮겨 적용하긴 이르다. 그걸 알고도 이 이야기가 반가웠던 건, 낮에 몸이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밤엔 떨어진다는 일주기 리듬 얘기가 내 밤 냉장고 습관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어서였다.

자가포식이라는 말,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다
공복 얘기를 검색하다 보면 ‘자가포식’이라는 단어가 꼭 따라온다. 세포가 굶으면 자기 안의 낡고 망가진 부품을 스스로 분해해서 재활용한다는 것. 세포판 대청소인 셈이다. 오스미 요시노리라는 일본 학자가 이 원리를 밝혀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진짜다. 노벨상까지 받은, 실재하는 세포 청소 시스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16시간 공복이면 자가포식이 켜진다”는 말을 나도 어디선가 주워듣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절반만 맞는 말이다. 오스미의 노벨상은 효모 세포로 밝힌 기초생물학이지, ‘간헐적 단식이 사람 노화를 되돌린다’는 임상 증명이 아니다. 자가포식은 살아있는 사람 몸에서 재기가 무척 어렵고, 몇 시간 공복에 얼마나 켜지는지 인간 기준으로 확정된 숫자가 없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설명도 동물 연구 위주고 인간 데이터는 소규모다.
그러니까 내가 밤 세 시간 덜 먹었다고 세포가 반짝반짝 닦였다고 믿는 건 좀 나갔던 거다. 그 기대는 접었다. 대신 붓기가 덜하고 아침이 가벼운, 눈에 보이는 변화만 내 몫으로 챙기기로 했다.
40대 여자라면, 나는 이렇게 조였다
여기서 멈춰야 할 이야기가 하나 있다. 2024년 봄에 “8시간 시간제한 식사가 심혈관 사망 위험을 91% 높인다”는 뉴스가 크게 났다. 나도 그때 흠칫했다. 그런데 미국심장협회 발표를 뜯어보니, 이건 이틀치 자가보고 식이 기록으로 사람들을 분류한 예비 연구였고, 협회 스스로 “이게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겁먹고 접을 일은 아니지만, 극단으로 여덟 시간 미만까지 조이는 건 나도 안 하기로 했다. 완만한 16시간, 이른 저녁 정도가 이 논란에서도 마음 편한 자리 같았다.
40대 여자한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긴 공복이 지방만 태우는 게 아니라 근육까지 함께 깎을 수 있다는 것. Frontiers in Nutrition의 근육 관점 리뷰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근단백질 합성이 떨어지는 데다 폐경 전후 에스트로겐 감소까지 겹쳐 근육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진다. 예전에 근감소증을 다루면서 40대 밥상부터 바꿔봤던 게 떠올랐다. 그때 알아둔 게 여기서 이어졌다. 관련해서 근감소증 예방, 40대 밥상부터 바꿔본 이야기도 같이 두면 결이 맞는다.
그래서 나는 네 가지만 지켰다. 열여섯 시간까지만 조이고 그 이상 욕심내지 않기. 먹는 끼니엔 단백질 챙기기. 주 두세 번은 근력운동으로 근육을 붙잡기. 그리고 잠이 안 오거나 안면홍조·피로가 심해지면 곧장 느슨하게 풀기. 실제로 여성은 장시간 공복이 코르티솔을 올리고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참, 당뇨약이나 혈압약을 먹거나 임신·수유 중이거나 섭식장애 이력이 있다면 이건 혼자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의사와 먼저 상의할 일이다.

밤 냉장고를 여는 손을 멈춘 지 몇 주. 노화를 되돌렸다거나 세포가 청소됐다는 말은 나도 못 하겠다. 다만 아침이 가벼워졌고, 저녁 시계를 한 번 더 보게 됐다. 지금에야 생각하면, 대단한 단식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밤에 안 먹었을 뿐이다.
밤에 안 먹기. 나한텐 딱 그만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