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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건강과 장수, 유산균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던 40대의 착각

장수가 목표

여성 하루 20g. 주에 서른 가지.

식이섬유 권장량이랑 다양한 식물 개수라는데, 숫자를 보다가 멈칫했다. 20g이 감이 안 잡혔고, 서른 가지는 더더욱. 나는 그동안 아침에 유산균 한 알 털어 넣는 걸로 장 건강은 어느 정도 챙긴다고 여기고 살았는데.

40대 넘어오면서 장이 확실히 예민해졌다. 며칠 신경 쓰면 바로 변비, 좀 무리하면 더부룩하고. 그냥 나이 드는 거겠거니 했다. 유산균 통은 부엌 한쪽에 놓여 있고, 매일은 아니어도 생각날 때 챙겨 먹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그러다 장내 미생물이 노화랑 수명까지 건드린다는 얘기를 읽고, 유산균 한 알로 퉁치던 내 방식이 절반짜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

백세인의 장은 젊었다는데

먼저 걸린 건 장수하는 사람들 얘기였다. 백세인(centenarian)의 장을 들여다봤더니, 같은 노년층보다 오히려 젊은 사람의 장을 닮아 있었다더라. 유익균 비중이 높고, 무엇보다 균 종류가 다양했다(Nature Aging, 2023).

여기서 내가 오해했던 지점. 특정 슈퍼 유산균 하나가 장수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핵심은 다양성이다. 장 속에 사는 미생물 종류가 얼마나 여러 가지로 유지되느냐. 나이가 들면 이 다양성이 자연히 줄어드는데, 그게 노년기 쇠약이랑 맞물린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다.

그러니까 유산균 한 종류를 매일 넣어준다고 장이 젊어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장 안에 다양한 균이 북적북적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나는 균을 넣기만 했지, 그 균들이 뭘 먹고 사는지는 생각도 안 했다.

백세인의 장은 균 종류가 다양했다

40대 넘어 자꾸 더부룩한 게 그냥 나이 탓일까

그럼 왜 하필 40대부터 장이 이렇게 티를 낼까. 이게 은근히 위로가 됐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게.

The Conversation의 정리를 보면, 나이가 들수록 장내 다양성이 줄고 장벽이 얇아지면서 투과성이 높아진다. 이른바 ‘장 누수’라고 부르는 상태로, 세균 조각이나 음식 항원이 혈류로 조금씩 새어 든다. 그러면 몸 전체에 은근한 만성 염증이 깔리는데, 이걸 염증노화(inflammaging)라고 부르더라. 노화 관련 질환을 밀어붙이는 동력이라는 거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면역세포의 상당수, 대략 70%가 장에 몰려 있다고 한다. 장이 면역을 평생 교육하고 조율하는 셈이다. 어쩐지 장이 안 좋으면 컨디션 전체가 가라앉더라니.

균을 넣는 것과 밥을 주는 것

이 대목에서 부티르산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장 세포가 포도당 대신 주 에너지원으로 쓰는 물질인데, 장 점막을 두툼하게 유지해서 그 ‘누수’를 막아준다(SCFAs 리뷰, PMC). 그런데 이게 어디서 오냐면 — 내 몸이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식이섬유를 먹었을 때 장 속 미생물이 발효해서 만들어낸다. 장을 지키는 기름칠을 장 속 세입자들이 대신 만들어주는 셈이다.

그제야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가 정리됐다. 이름이 비슷해서 늘 헷갈렸는데.

구분 정체 예시
프로바이오틱스 유익한 살아있는 균 자체 요거트, 김치, 유산균 영양제
프리바이오틱스 유익균의 먹이 식이섬유, 올리고당

프로바이오틱스는 좋은 균을 넣어주는 거고, 프리바이오틱스(식이섬유)는 이미 장에 살고 있는 좋은 균한테 밥을 주는 거다.

내가 놓친 게 정확히 여기였다. 균은 사서 넣었는데 먹이를 안 줬으니, 넣은 균이 자리를 잡을 리가. 유산균만 열심히 먹고 정작 나물이며 잡곡이며 콩은 뒷전이었다. 참, 식약처가 유익성을 인정한 프로바이오틱스 균종이 열아홉 가지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모든 유산균이 다 인정받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 차이

발효식품이 이겼다는 실험,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실험 하나. 스탠퍼드 의대 임상(2021)이 건강한 성인 서른여섯 명을 열 주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쪽은 발효식품 위주, 한쪽은 고섬유 식단.

결과가 의외였다. 발효식품군은 장내 다양성이 늘고 염증 관련 단백질이 열아홉 종이나 줄었다. 많이 먹은 사람일수록 효과가 컸다. 반면 고섬유군은 열 주 만에 다양성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연구진도 예상 밖이라고 밝혔다더라.

그래서 나는 잠깐, 아 그럼 발효식품이 답이구나, 김치랑 요거트만 부지런히 먹으면 되겠네 하고 결론을 내렸다.

따져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이 실험은 식이섬유가 소용없다는 얘기가 전혀 아니었다. 연구진과 후속 논의가 권한 건 섬유질과 발효식품을 함께 가는 것, 이른바 원투펀치였다. 고섬유의 효과는 원래 내 장에 어떤 균이 사는지, 얼마나 오래 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애초에 열 주는 짧고 서른여섯 명은 적었다. 프리바이오틱스(먹이)가 깔려 있어야 프로바이오틱스(균)가 자리를 잡는 거니까,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임이 아니었던 거다.

이걸 알고 나서 예전에 저녁을 일찍 먹고 공복 시간을 늘려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도 뭔가 하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가, 결국 여러 습관이 같이 굴러가야 몸이 반응한다는 걸 배웠는데. 장도 똑같더라.

그래서 장바구니가 좀 바뀌었다

거창하게 식단을 갈아엎진 못했다. 대신 두어 가지만 바꿔봤다.

밥을 잡곡으로 돌렸고, 나물이나 콩을 매끼 조금씩 곁들였다. 여성 기준 하루 20g이 목표라는데, 한 번에 채우려다 며칠은 오히려 가스가 차서 혼났다. 급하게 늘리면 배가 더부룩해지니 서서히, 물도 넉넉히. American Gut Project에서 나온 ‘주에 서른 가지 식물’ 얘기도 처음엔 막막했는데, 견과·씨앗·통곡물·콩·허브·과일까지 다 세는 거라 막상 적어보니 생각보다 종류가 나왔다. 커피랑 다크초콜릿도 식물로 친다니 좀 웃겼다.

발효식품은 원래 김치가 있으니 요거트를 아침에 하나 더했다. 김치 유산균은 위산에 강해 장까지 살아 도달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대신 나트륨이 있으니 무한정 건강식으로 밀어붙일 건 아니고. 유산균 영양제는 끊지 않았지만, 이젠 그게 전부가 아니라 먹이를 같이 챙긴다는 감각으로 먹는다.

물론 이걸 안다고 당장 장이 젊어지는 건 아니다. 스탠퍼드도 열 주, American Gut도 주 단위로 봤으니 며칠 가지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알면서도 어제는 저녁에 라면을 끓였다. 뭐 그런 거지.

오늘 저녁은 잡곡밥에 나물 두어 가지. 냉장고에 요거트 있나 확인부터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