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열대야에 잠 안 올 때, 결국 하나로 정리되더라

장수가 목표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

베개가 축축하고 등이 땀에 붙어 있었다. 창밖은 여전히 후덥지근하고, 선풍기는 돌아가는데 더운 바람만 옮겨 놓는 것 같았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아도 몸이 잠글 스위치를 못 찾는 느낌. 열대야가 뭔지는 다들 안다. 기상청은 밤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안 내려가는 밤을 열대야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밤새 25도 밑으로 안 떨어지면 사람이 잠들기 어려운, 그런 밤이라는 뜻이다.

그날 이후로 에어컨 온도도 바꿔보고, 자기 전에 씻는 시간도 바꿔보고, 이불도 갈아봤다. 이것저것 해보다 보니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여름밤 잠에 관한 팁이 그렇게 많아 보여도, 결국 다 한 문장으로 모이더라. “몸속이 식어야 잠이 온다.”

몸속이 식어야 잠이 온다는 그 한 문장

이 말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몸이 식어야 잔다는 게 너무 당연해 보여서.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식는다’가 내가 생각한 거랑 달랐다. 사람은 잠들기 두어 시간 전부터 몸 중심의 온도, 그러니까 심부체온이 서서히 떨어진다. 체온이 일종의 수면 스위치라는 거다. 재밌는 건 이때 손발은 오히려 따뜻해진다는 점이다. 말초 혈관이 열려서 손발로 열을 내보내고, 그 덕에 몸 중심이 식는다. 잘 때 발이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열대야가 문제인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밤 기온이 25도 밑으로 안 떨어지면 몸이 열을 내보낼 데가 없다. 손발로 밀어내려는 열이 갈 곳을 못 찾으니 심부체온이 안 떨어지고, 그래서 못 자고 자다가도 자꾸 깬다. 실제로 몸속 온도를 낮춰주면 더 빨리, 더 안정적으로 잠든다는 실험 보고들이 있다더라. 그날 밤 내 등에 땀이 고여 있던 것도 결국 몸이 열을 못 버리고 있었다는 신호였던 셈이다.

그러니 여름밤 수면법이라고 떠도는 것들, 에어컨이든 샤워든 침구든, 다 이 하나를 어떻게 도와줄 거냐의 문제였다. 그 다음부터는 방법 하나하나가 덜 헷갈렸다.

잠들기 전 몸속 온도가 내려가는 흐름

씻는 시간을 자기 직전에서 한 시간 앞으로 당겼다

나는 원래 잘 준비 다 하고 마지막에 씻었다. 개운하게 바로 눕는 게 좋아서. 그게 오히려 잠을 밀어내고 있었다.

자기 한두 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로 씻으면 따뜻한 물에 말초 혈관이 열린다. 그 상태로 시원한 침실에 누우면 열린 혈관으로 열이 쭉 빠져나가면서 심부체온이 서서히 떨어진다. 앞의 그 한 문장을 몸으로 실행하는 방법인 거다. 반대로 잠들기 직전에 뜨거운 물로 씻으면 몸이 데워진 채로 눕게 돼서 오히려 잠이 달아난다. 예전의 내가 딱 그러고 있었다.

찬물로 확 씻는 건 어떨까 싶었는데, 여름엔 이게 좀 애매하다. 순간은 시원한데 찬물이 혈관을 오그라들게 해서 열이 빠져나갈 길을 막는다더라. 그래서 열대야엔 차라리 미지근한 물이 낫다는 거다. 이건 알고 나서 좀 김이 빠졌다. 더운 날 찬물 샤워가 정답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씻는 시간을 눕기 한 시간쯤 전으로 당겼다. 씻고 나서 잠깐 미적지근하게 남는 그 시간이 아까웠는데, 그게 몸이 식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다르게 보였다.

에어컨은 켜고 끄고가 아니라 언제 끄느냐였다

에어컨을 밤새 켜자니 냉방병이 걱정이고, 끄고 자자니 새벽에 더워서 깬다. 나는 이 사이에서 매년 헤맸다.

처음엔 끄고 자는 게 몸에 좋겠거니 했다. 따져보니 그게 되레 잠을 깨우고 있었다. 끄고 자면 방 온도가 다시 올라 심부체온이 못 떨어지고, 그러면 자다 깨는 건 그대로다. 그렇다고 밤새 세게 틀면 과냉에 건조로 또 깬다. 질병관리청은 여름철 건강 실내 냉방온도로 26~28도, 실내외 온도차는 5도 안팎을 권한다. 무작정 18도로 얼려버리라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절충안을 찾았다. 잠들기 전에 방을 충분히 식혀두고 취침 예약을 한두 시간 뒤 꺼지게 걸어두는 방식. 잠드는 결정적인 그 시점에 방이 시원해서 심부체온이 잘 떨어지게 해두는 거다. 대신 바람이 몸에 바로 닿지 않게 풍향은 위로 올렸다. 냉방을 오래 돌린 날은 두어 시간마다 잠깐 창을 열어 환기도 한다. 이 각성 문제는 열대야만의 일이 아니라서, 이유 없이 새벽에 깬다면 새벽에 자꾸 깨는 이유를 따로 정리해둔 것도 같이 보면 도움이 된다.

한 가지 더. 습도다. 같은 온도라도 눅눅하면 훨씬 덥게 느껴진다. 실내 습도는 40~60% 정도가 편한데, 여름엔 제습만 잘 돌려도 온도를 크게 안 내려도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온도만 신경 쓰다가 습도를 놓쳤던 게 나였다.

이불이랑 물은 생각보다 컸다

이불은 사실 크게 생각 안 했다. 그냥 얇으면 되는 줄 알았다.

바꿔보니 소재가 달랐다. 리넨이나 인견처럼 땀을 빨리 먹고 통기가 잘 되는 소재는 이불 속에 열이 갇히지 않게 해준다. 결국 이것도 몸이 열을 버리게 돕는 거다. 냉감 소재도 닿는 순간 시원한 것보다, 열과 땀이 안 갇히게 해주는 쪽이 밤새 도움이 된다.

물도 여름밤엔 은근히 발목을 잡는다. 밤새 땀으로 수분이 빠져서 아침에 이미 가벼운 탈수 상태로 깨기 쉽다. 그렇다고 자기 직전에 물을 벌컥 마시면 화장실 가느라 또 깬다. 그래서 낮에 자주 나눠 마시고 저녁 늦게는 줄이는 쪽으로 바꿨다. 많이가 아니라 자주. 이게 여름밤 각성을 줄이는 데 낫더라.

여름밤의 맥주 한 잔은 반쪽만 맞았다

그리고 여름밤의 맥주 한 잔. 이건 반쪽만 맞는 말이었다. 술을 마시면 빨리 잠드는 건 맞다. 그런데 수면 후반부를 흔들어놔서 새벽에 깨게 만든다. 게다가 이뇨 작용으로 갈증과 화장실이 겹치니 여름엔 특히 불리하다. 카페인도 마찬가지다. 더우면 아이스커피를 자꾸 늘리게 되는데, 반감기가 길어 늦게 마신 커피가 밤까지 남는다. 나도 오후 커피를 몇 시까지 마셔도 되나 한참 따져봤었다. 여름엔 이 총량이 자기도 모르게 늘어서, 열대야 탓만 하기엔 내 잔이 문제인 날도 있었다.

여름밤 잠이 안 온다고 이걸 다 한 번에 뒤집을 필요는 없다. 오늘 밤은 씻는 시간부터 한 시간 앞으로 당겨보려 한다. 그거 하나면 오늘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