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밤마다 다리를 주물렀다.
어릴 땐 그냥 엄마가 다리가 아픈가 보다 했다.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침대에서 다리를 계속 접었다 폈다 하고, 그러다 못 참겠는지 일어나 거실을 몇 바퀴 돌았다. 나는 그게 나이 들면 다들 그러는 건 줄 알았다.
그러다 얼마 전 내 차례가 왔다. 낮엔 멀쩡한데, 자려고 불 끄고 누우면 종아리 안쪽이 근질거린다.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니고,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안에서 뭔가 당기는 것 같기도 한, 말로 하기 애매한 느낌. 참으면 참을수록 다리를 움직이고 싶어서 결국 이불을 걷어차고 다리를 흔든다. 흔드는 동안은 좀 낫다. 멈추면 또 근질거린다. 그렇게 뒤척이다 보면 새벽 한 시.
찾아보니 이게 이름이 있는 증상이었다. 하지불안증후군. 자려고 누우면 다리가 근질거려 못 자는 게 나만 유난 떠는 게 아니라 신경계 쪽 문제일 수 있다더라. 엄마가 밤마다 거실을 돌던 그 장면이, 20년쯤 지나서야 설명이 됐다.
근질거리는데 아픈 건 아닌, 이 애매한 느낌의 정체
가장 먼저 걸린 건 이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였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를 보면, 하지불안증후군(RLS)은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것처럼 가만히 쉴 때 다리에 불쾌한 이상 감각이 생기고,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나는 신경계 질환이다. 환자들이 쓰는 표현이 딱 내가 느낀 거였다.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 당기고 저리다, 간질간질하다 찌릿하다. 정확한 통증이라기보다 설명하기 곤란한 불쾌감.
그리고 이게 왜 밤에만 심한지도 그제야 알았다. 저녁이나 밤에 증상이 시작되거나 더 나빠지는 게 이 병의 특징이라, 하필 잠들려는 시간에 다리가 난동을 부리는 거다. 그러니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밖에.
읽다가 제일 고개를 끄덕인 대목은 따로 있었다. 움직이면 잠깐 편해지고, 다시 가만히 있으면 재발한다는 것. 이게 다른 다리 통증이랑 구별되는 결정적 지점이라더라. 쥐가 났으면 움직인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근데 이건 이불 걷어차고 다리 흔들면 그 순간은 사르르 가라앉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밤새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아, 그래서 엄마가 거실을 돌았구나.
도파민 탓이라는데, 알고 보니 철분 이야기였다
원인을 찾다가 처음엔 이걸 도파민 문제로 정리하려 했다.
실제로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기능 이상이 핵심 병태생리로 지목된다. 도파민이 아예 고갈됐다기보다 조절이 어긋난 상태라는 것. 여기까지 읽고 “아 뇌 문제구나” 하고 넘어가려는데, 그게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RLS 진단·치료 리뷰(PMC)에 따르면 그 도파민을 만드는 데 철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철분이 부족하면 도파민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증상이 나타나거나 심해진다. 반대로 철분을 보충하면 증상이 줄어든다. 결국 뇌 이야기의 뿌리에 철분이 있었던 거다.
여기서 핵심 지표가 페리틴이다. 몸속 철분 저장량을 보여주는 혈액검사 항목인데, 흥미로운 건 일반 빈혈 기준으로는 정상이라도 RLS 환자에겐 부족할 수 있다는 점. 국제 진료 알고리즘은 페리틴이 75µg/L 이하이거나 트랜스페린 포화도가 20~25% 미만이면 철분 보충을 시작하도록 권한다. 이건 일반 빈혈 기준이 아니라 RLS 진료 기준이라는 걸 꼭 기억해야 한다. “빈혈은 아닌데 다리는 근질거리는” 경계 상태가 여기 걸린다.
나는 이 대목에서 몇 년 전 건강검진 결과지가 떠올랐다. 빈혈 항목엔 아무 표시가 없었다. 근데 페리틴을 따로 본 기억은 없다. 그러니까 “정상”이라고 안심했던 그 종이가 이 증상까진 걸러주지 못했을 수도 있는 거다. 물론 이건 혈액검사로 페리틴·철분·트랜스페린 포화도를 실제로 확인해야 아는 거지, 내가 추측으로 단정할 일은 아니다. 철분 보충제도 검사 없이 함부로 먹는 건 아니라니 병원에서 확인부터 하는 게 순서다.

나만 그런가 싶을 때 눌러보는 다섯 칸
그럼 이게 정말 하지불안증후군인지, 그냥 다리 저림인지 어떻게 가르나.
세계 하지불안증후군 연구회(IRLSSG)가 제안한 필수 진단 기준 다섯 가지가 있다. 다섯을 다 만족해야 하는데, 밤마다 다리 흔들던 입장에서 하나씩 눌러보니 묘하게 다 걸렸다.
| 자가 체크 | 나한테 대입해보면 |
|---|---|
|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강한 충동, 불쾌한 감각 동반 | 근질거려서 결국 다리를 흔든다 |
| 쉬거나 누우면 시작·악화 | 낮엔 멀쩡, 누우면 시작 |
| 움직이면 부분적·완전히 완화 | 흔드는 동안은 편하다 |
| 저녁·밤에 시작하거나 심해짐 | 하필 잠들 시간에 난동 |
| 다른 원인(쥐·저림·정맥류)으로 설명 안 됨 | 쥐 난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
다섯 칸을 다 지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좀 놓였다. 그동안 “왜 나만 못 자지, 예민한가” 자책하던 게, 자책할 일이 아니라 확인할 일이었던 거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 다섯 칸은 “혹시 나?” 감을 잡는 용도지 확진이 아니다. 원인이 철분인지 다른 기저 질환인지, 복용 중인 약 때문인지는 결국 병원 검사로 갈라야 한다. 나도 이 표만 보고 다 안 것처럼 굴다가, 아니 결국 진료 예약을 잡았다.
밤에 다리를 흔들다 새벽을 넘겼다면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저울질을 제일 오래 했다.
정리해보면 신호는 이렇다. 증상 때문에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서 낮 피로가 이어질 때, 거의 매일 주 3회 이상 나타나 일상에 지장을 줄 때, 마사지나 걷기 같은 생활 관리로 조절이 안 될 때, 그리고 빈혈·신장질환·당뇨·임신이 있거나 복용 중인 약이 많을 때. 진료과는 신경과나 수면 클리닉이고, 가면 혈액검사로 페리틴·철분·트랜스페린 포화도를 확인한다.
약 이야기도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다. 감기약·수면유도제·멀미약에 흔한 항히스타민제, 일부 항우울제 같은 약이 RLS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더라. 그렇다고 지금 먹는 약을 혼자 판단해서 끊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다. 복용 중인 약이 있으면 임의로 중단하지 말고 반드시 의사와 먼저 상의해야 한다. 이건 자가 조정할 영역이 아니다.
검사 전까지 내가 실제로 손본 건 생활 쪽이었다. 저녁 커피부터 끊었다. 카페인·술·담배가 증상을 악화시킨다길래, 오후 카페인 습관을 몇 시까지 마셔도 되나 따져봤던 기억을 다시 꺼냈다. 낮엔 30분쯤 걷고, 자기 직전 격렬한 운동은 오히려 방해된다길래 피했다. 자기 전엔 종아리를 스트레칭하고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갔다. 침실은 어둡고 조용하게, 잠을 망치던 것들을 하나씩 손보던 방식 그대로. 철분이 많다는 살코기·달걀노른자·시금치도 좀 챙겼다. 물론 철분 보충제는 검사하고 의사랑 상의한 다음 일이다.

이걸 다 한다고 근질거림이 딱 멈추진 않았다. 어떤 밤은 여전히 다리를 흔들다 새벽을 넘긴다. 다만 이제는 그게 내 예민함 탓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 걸 안다. 흔들고 싶으면 흔들되, 페리틴 숫자 한 번 들여다볼 때가 됐다는 신호.
오늘 밤도 종아리가 스멀거리면, 이번엔 자책 대신 달력에 병원 갈 날부터 적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