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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유전, 부모가 오래 살면 나도 오래 살까

장수가 목표

검색창에 “수명 유전”이라고 쳐본 건, 명절에 시댁 어른들 나이를 손가락으로 세다가였다.

시아버지 쪽은 대체로 오래 사셨는데 친정은 그렇지가 않다. 아버지가 예순 넘기고 편찮으셨던 게 계속 걸렸다. 그럼 나는 어느 쪽을 닮는 건가. 이미 정해진 건가. 그런 게 궁금하면서도 무서웠다. 반은 확인하고 싶고 반은 모르는 채로 두고 싶은, 그런 검색이었다.

결론부터 적어두면 이렇더라. 부모가 오래 살면 나한테 어느 정도 유리한 건 맞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지금 손댈 수 있는 몫이 훨씬 컸다.

검색하다 제일 먼저 걸린 숫자, 4분의 1

수명이 유전이냐 아니냐를 재는 표준 방법이 쌍둥이 연구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유전자를 100% 공유하는 일란성과 약 50% 공유하는 이란성의 수명 차이를 비교해서, 유전이 설명하는 몫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덴마크 쌍둥이 2,872쌍을 추적한 연구에서 나온 숫자가 남성 약 0.26, 여성 약 0.23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수명이 다른 이유 중에 유전으로 설명되는 건 대략 4분의 1이라는 뜻이다. 나머지 4분의 3은 어떻게 살았느냐, 어떤 환경이었느냐가 좌우한다.

이 숫자를 보고 좀 멍했다. 나는 반쯤은 정해졌겠거니 하고 겁을 먹고 검색창을 열었는데, 4분의 1이라니. 다른 쌍둥이 코호트에서는 약 0.33 정도로 조금 더 높게 나오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절반은 넘지 않았다.

수명에서 유전과 생활습관의 몫

물론 반대편 이야기도 있긴 했다. 2025년에 나온 한 재분석에서는, 기존 추정치가 사고사나 감염 같은 ‘몸 밖의 이유로 죽은 경우’까지 뭉뚱그려 세는 바람에 유전 몫을 낮게 잡았다고 봤다. 순수하게 몸이 늙어서 죽는 부분만 떼어 보면 유전율이 약 50%까지 올라간다는 거였다. 그러니 4분의 1을 절대값처럼 새길 건 아니고, “대체로 4분의 1, 어떻게 세느냐에 따라 더 높게 보는 시선도 있다” 정도로 담아두는 게 맞겠더라.

그런데 100세까지 가는 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여기서 한 번 뒤집혔다.

평균 수명은 습관이 좌우한다는 게 위의 결론인데, 그럼 아주 오래 사는 사람들은 뭐냐. 100세, 105세까지 가는 그 사람들 말이다.

뉴잉글랜드 100세인 연구를 보면, 100세인의 형제자매가 같은 시기에 태어난 다른 사람들보다 100세까지 살 확률이 남자 형제는 약 17배, 여자 자매는 약 8배 높았다. 유전이 별 상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숫자다. 100세 도달 자체의 유전율은 여성 약 0.33, 남성 약 0.48로, 앞의 평균 수명 유전율보다 확실히 컸다.

읽고 나서야 정리가 됐다. 80세, 9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건 습관이 크게 좌우하는데, ‘105세, 110세’라는 극단으로 가려면 확실히 특별한 유전자 조합이 필요하다는 거다. 두 이야기가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나 같은 40대가 현실적으로 겨눌 자리는 후자가 아니다. 110세 같은 건 애초에 로또다. 내가 손댈 수 있는 건 ‘건강하게 80대까지’이고, 그건 유전이 아니라 습관 쪽 이야기였다.

유전자는 카드, 그 카드를 어떻게 내는지는 습관

장수 유전자라는 말도 많이 봤는데, 이번에 제일 자주 나온 게 FOXO3와 APOE였다.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서 반복해서 확인된 둘이라더라.

FOXO3는 세포가 스트레스를 견디게 하는 스위치 같은 유전자라, 보호형을 가진 사람은 95세까지 살 확률이 약 1.9배 높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다만 이걸 읽으면서 조심스러웠던 건, 장수 유전자 하나 있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효과가 각각 미미한 수많은 변이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거지, 검사 한 번으로 “당신 몇 살까지 삽니다” 하는 상품이 될 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 광고를 보면 이제 좀 걸러 듣게 될 것 같다.

정작 마음에 남은 건 후성유전이라는 개념이었다. 타고난 유전자 서열 자체는 못 바꾸지만, 그중 어떤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지는 생활습관이 바꾼다는 이야기다. 식단, 운동, 금연, 스트레스 관리가 유전자 발현 패턴을 실제로 움직인다는 것.

2년간 식단과 신체활동을 바꿔본 개입 연구에서는 DNA 메틸화로 잰 노화 지표가 실제로 늦춰졌다더라. 상관관계를 넘어서 “바꾸니까 늦춰지더라”까지 간 거다. 유전자를 카드로 받았어도, 그 카드를 어떻게 낼지는 내 손에 있다는 말이 그제야 와닿았다.

블루존 이야기가 자꾸 습관 쪽으로 기우는 것도 이 맥락이더라. 100세인이 유난히 많은 지역들의 공통점이 유전이 아니라 채소·콩 위주 식단, 자연스러운 몸 움직임, 사람들과의 유대 같은 생활이었으니까. 물론 블루존은 최근 들어 통계 문제를 지적받기도 해서 절대 진리처럼 받을 건 아니지만, 습관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여전히 세다.

그래서 40대인 지금 붙잡을 수 있는 것

가장 궁금했던 대목은 결국 이거였다. 그럼 지금 뭘 하면 되냐.

하버드가 12만 명 넘는 사람을 최대 34년 추적한 연구가 답에 가까웠다. 다섯 가지 저위험 습관을 다 지킨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0세 시점 기대여명이 여성 약 14년, 남성 약 12년 더 길었다. 심혈관 사망 위험은 82%, 암 사망 위험은 65% 낮았다. 그 다섯 가지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다섯 가지 내가 걸린 곳
금연 안 피우니 통과
적정 체중 애매하다
규칙적 운동 늘 마음만
절주 나쁘진 않다
채소·생선 위주 식단 반쯤

써놓고 보니 나는 딱 절반 걸쳤다.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닌데도 이게 안 지켜진다.

그리고 숫자 하나가 오래 남았다. 한국인 기대수명은 약 83세인데 건강수명, 그러니까 아프지 않고 사는 기간은 약 65세라더라. 약 18년을 병을 안고 산다는 뜻이다. 오래 사느냐보다 그 격차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진짜 문제였고, 그 격차는 유전이 아니라 습관 쪽 이야기였다. 근육 지키는 것도 그 격차 줄이기의 일부라는 걸 근감소증을 알아보다가 이미 느꼈던 터였다.

검색을 시작할 땐 부모 수명이 내 운명을 반쯤 정해놨다고 믿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야 안 지키는 게 덜 미안하니까. 4분의 1이라는 숫자는 그 핑계를 뺏어갔다.

나머지 4분의 3은 내 몫.